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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박애진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3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사계절 출판사의 이번 신작,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는 5명의 작가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봤을 법한 옛날 이야기들을 SF로 재탄생시킨 단편집이다. 순서대로 '심청전' '별주부전' '해님 달님' '장화와 홍련' '흥부와 놀부'를 각색하였다. 그 내용은 이미 알고 있기에 고전에 SF라는 장르의 특성이 녹아 들었을 때 친숙한 이야기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하여 새롭게 달라진 풍경을 보여 줄지 기대하게 한다.
대사로 이야기가 급전개되면서 뒷심을 잃거나, 성차별을 강화시킬 위험성이 있거나, 그 당시의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새롭게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단편도 있었지만, 표제작이기도 한 임태운 작가의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 코닐리오의 간」은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용왕을 구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올라간 거북이가 결국은 토끼의 꾀에 속아 결국 간을 손에 넣지 못하는 이야기를 SF의 흐름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섞었기 때문이다.
용'왕'은 '용궁주'라는 성별중립적인 단어로 등장하고, 거북이는 전투형 안드로이드 T-30973 코드명 '타르타루가', 토끼는 용궁주의 신체 부품인 클론 '코닐리오'로 각색되었다. 타르타루가는 고전의 이야기대로 용궁주의 명령을 받아 코닐리오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올라온다. 코닐리오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던 소녀로, 타르타루가에게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이뤄달라고 제안한다.
코닐리오와 타르타루가의 여정에는 인간중심 사고를 허무는 장면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외에 다른 존재에게는 영혼이 없는가, 어째서 인간만이 영혼의 유무를 판별하는가, 다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는 '영생'은 값진가, 서로를 착취하지 않는 자유의 방식은 어떤 것인가...
그 장면들이 던진 질문은 "설계와 조립으로 만들어진 존재"(118면)에게 파장을 일으키고, 그 여진은 우리에게 전달된다. '설계와 조립'은 정밀함을 요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밀함이 누군가를 짓밟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을 밀어붙인다. 그런 식의 정밀함은 거짓과 기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득을 보는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의미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느슨함이라고 말한다.
SF는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적극적으로 전복시키는 장르다. 그럼으로써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명확히 드러내고, 현실에서 억압된 존재들을 해방시키고, 그 자유를 공유하게 한다. 고전 또한 현실 세계의 모순을 짚고 풍자한다. 고전과 SF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만난다.
코닐리오는 타루타루가가 자신을 찾아오기 전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언니'들과 만났었다. 용궁주의 생명 코드를 해킹할 계획에 참여했고, 해킹 프로그램의 시동 열쇠를 건네받아 마침내 "영생을 구가하고 있는 한 여인의 육체를 '해킹'"(138면)하는 데 성공한다. 따라서 용궁주의 말만 따를 수 있는 타루타루가는 자신이 계속해서 지켜 왔던 그 용궁주가 아니라, 그 몸을 해킹한 코닐리오의 명령에 따르게 된다.
부패한 권력이 몰락하는 데서 오는 쾌감, 새로운 정의가 그 힘을 올바르게 쓸 것이라는 환희는(코닐리오가 육지에서 벌인 범죄로 쫓기게 될 용궁주의 고생은 덤이다), 희생 외에 선택지가 없었던 이들도 함께 웃을 수 있도록 세계가 재편성될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진다.
"육지에서 난 어딜 가도 죄수였지만, 이제 이 바닷속에서 난 어딜 가도 '왕'이야."(143면)
'인간'이 지배하던 바다는 이제 각 존재가 왕이 되는 세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늘은 어떠한가? 코닐리오의 '언니'들이 그러했듯, 현실 속의 '언니'들도 싸워서 참정권과 교육권 등을 후세대가 누릴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데이트 폭력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여성의 몸이 불법화되지 않도록, 그러니까 안전하게 오롯이 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의 균열을 목격하고 그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오늘의 누적이 만들어갈 내일을 꿈꾸게 하는 것. 그것이 고전과 SF가 다시 쓴 오늘의 의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