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조 -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송섬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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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가 지나는 골목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처럼 하루하루의 단편을 해시태그(#)를 붙여 기록해 놓은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롤랑 바르트가 느꼈던 정념을 매일 기록한 것이라면, 후자는 '나'가 처음 겪었던 아버지가 죽었을 때부터 스물 네 살이 되어 그의 동거인인 조와 고양이 설리가 죽고 그 죽음을 어떤 형태로든 애도하는 데 이른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전자는 어머니의 죽음에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흔적이 역력한데 (개인적으로 롤랑 바르트가 끝내 애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후자는 도망쳤다가 멈췄다가 흐른다. 그렇게 애도해나간다.

햇빛이 잘 들지 않고, 계단 세 개 덕분에 '나'가 살아가는 반지하라는 공간은 외부에서 숨겨져 있다. 그런 곳에서 '나'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열의 없이 운영되는 허름한 술집에서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신다. 그곳의 사장인 조와도 점차 가까워져 자연스럽게 동거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있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어느 날 문득 등장한 아저씨, 어쩌면 '나'의 아버지의 유령일지도 모르는 존재와 무해하게 살아갈 뿐이다.

두 사람은 숨겨진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을 발견한다. 발코니와도 같은 골목을 말이다. '남겨진 골목'은 창문을 닫으면 사라지는 곳으로 "아무도 그곳에서 우리의 창문을 노크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면서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오직 고양이 두 마리와 여자와 남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 (114쪽)다. 

그런 장소에서 아저씨가 불현듯 사라지고, 고양이 설리가 죽는다. 그리고 조가 죽는다. 그러면서 '나'는 현관문에서 목을 매달았던 아버지의 기억을 반추한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은 정리되지 못한 채 '나'에게 매달려 있고, 그런 상태를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유년기로부터 너무 빨리 도망쳤어. 사람 모양 구멍을 남기고 탈출하는 것처럼."

126쪽



'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도망쳤으나 '죽음'은 또다시 '나'를 찾아온다. 어느 새,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아저씨의 유령처럼 이번에는 고양이 설리가 죽는다. '나'는 설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상실감을 얼려 슬픔을 유예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슬퍼할 방법을 알게 될 때까지 시간을 멈춰 놓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조는 금요일에 집을 나서 그 어떤 폐쇠회로에도 찍히지 않다가 일요일 새벽 전철 선로를 따라 걷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서른이 되는 것을 기요틴에 비유하던 그는 '나'의 추측대로 '남겨진 골목'을 지나 기찻길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창문을 열어젖힐까 두려워하면서도 창문을 열어주기를 바라면서."(213~214쪽)

날짜가 바뀌면 절기도 따라서 바뀌고, 달력이 넘어가는데 '나'는 그런 시간의 연속성을 달력에 적힌 절기가 하지니까 여름을 지나는 중이군, 하는 식으로 의식해서 느끼려고 하는, 그렇지 않고서는 시간이 흐른다는 걸 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죽음이 앗아간 것을 시간이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기대가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오히려 시간이 자신을 어딘론가 데려다주지 않으며 이동하는 것은 자신이고, "이동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아가 되지 않는 것"(212쪽)임을 깨닫는다. 

죽음은 대상과 자신이 함께했던 시간이 단절됨을 의미한다. 어느 한쪽의 시간이 일방적으로 끝났으나 남겨진 자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 이 간극이 만들어낸 시간 차는 삶을 살아가는 길 또한 막아버린다. '나'는 도망쳤으나 도망치지 못했고, 멈췄으나 끝내 설리를 묻어주고, 골목이라는 남겨진 장소에서 조를 기다린다.

길을 잃어버려 미아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멈춤이다. 길이 엇갈리지 않게, 멈춰 서 있는 날 그가 찾을 수 있게. 숨겨진 반지하에 있던 숨겨진 골목은 달력상에 존재하는 절기라는 절대적인 시간으로부터 '나'를 숨겨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가 얼마든지 골목에 머물 수 있도록, 그런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나'가 마음껏 슬퍼하고 때로는 울 수 있도록, 그리하여 계절이 지나가듯 애도가 지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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