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와 아레스 - 제17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66
신현 지음, 조원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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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작은 창문 하나 닫히면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을 흔히 경주마에 비유하곤 한다. 말은 눈가리개를 한 채 정해진 경주로를 따라 달리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95쪽)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뒤쳐지는 순간 낙오된다고 채찍질을 해대면서 돌파구는 하나뿐이라고 눈을 가리면 '승부 근성'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테나와 아레스』는 기수가 꿈인 새나와 경주마의 교감을 통해 속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새로운 트랙을 함께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경주 상황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실감나게 경기를 묘사한다. 승마장과 마방, 초원,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마필 관리사와 장세사 등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말 한 마리가 경주마가 되려면 말을 키울 공간과 말을 돌보고 가꿀 인력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낭비란 있을 수 없다. 경주마가 되지 못하는 말에게 귀한 자원을 투자할 이유가 없으니, 그 말의 말로는 정해져 있다. 바로 도축이다.

경주마는 혈통에 따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경주마로서 최상위급 혈통에 희귀한 흰색 말인 아테나는 억 단위에 팔린다. 혈통도 그저그렇고, 흔하디 흔한 갈색 말인 아레스는 팔리지 않았고 '헐값'에라도 내놓을 수 있는 도축장에 팔린다. 아테나와 아레스가 망아지였을 때부터 지켜본 새나의 눈에는 두 마리 모두 경주마로서 손색이 없는데도 말이다.

엄마 아빠 모두 기수이고, 어려서부터 말과 함께 자란 새나는 아빠처럼 최고의 기수가 되기를 꿈꾼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말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일은 새나에게 당연한 일이다. 경주마가 되고 싶지 않은 아레스가 '처분'되지 않도록 새나는 아레스를 훈련시킨다. 그러면서 새나는 알게 된다. 아테나와 아레스도 경주마가 되고 싶었을까?

특별한 이유 없이 말 무리가 바람을 가르며 드넓은 목장을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엄마의 사고 이후 말이 싫어진 새나의 쌍둥이 언니 루나가 무심결에 그 장면을 보고 멋있다고 할 만큼. 기수는 말을 빠르게 몰아 돈을 벌고, 관중은 경주를 보며 희열을 느끼며 우승을 점쳐 본다.

그러나 그곳의 열정과 흥분은 또 한 번 사람들의 눈을 가린다. 다른 선수의 길을 방해하지 않는 '페어플레이상'은 우승 트로피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고, 기수가 다치고 심지어 경주마가 죽어도 슬퍼할 시간은 없다. 재빨리 수습해서 다음 경기에 차질이 없게 해야 한다.

아테나는 그렇게 죽는다. 훈련에 반항하지 않고 따르던 그 아이가 벽으로 돌진했다. 폭발적인 힘으로,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달린 후 충분히 휴식을 취했어야 했는데 아테나는 그러질 못했다. 마주가 계속해서 경기에 내보냈다. 아테나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은 어떠한가. '좋은 성적을 받아 SKY 정도는 거뜬히 합격해 대기업에 입사하여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성공한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를 강요당하고 있지 않은가. 매해 수능이 끝나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래도 입시 경쟁은 멈추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과 강박이 땔깜이 되어 경쟁에 불을 떼기 때문이다. '천천히 해도 돼' 라고 말해 주는 너그러운 세계는 정녕 경쟁에서 도망친 자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 작품은 냉소에 지지 않는다. 경주마가(된 우리가) 쓰고 있던 눈가리개를 벗기고 경주로가 아닌 다른 곳에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를 울린다. 맹목적이었을지언정 다 많은 사람과 뛰었던 길 위에서 내려오는 건 어색하고 두렵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달린다고 해서 모두에게 평등한 성공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나에게 맞는 길을 가겠다는데, 나만 이상해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말과 함께 전속력으로 달리는 그 순간이 좋아서 기수가 된 엄마는 부상을 당해 더는 기수로 활약할 수 없게 된다. 엄마에게는 사망 선고와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길을 찾았다.

엄마가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새나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기수였고, 새나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기수다.

"재활 승마를 공부해 보려고.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한 번 해 보고 싶어."

192쪽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해 본 후 포기하는 것. 자포자기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까지 가 본 자신에게 긍지를 갖는 것이다. 자긍심은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돼 줄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안다. 작은 창문 하나 닫히면 더 큰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이것이 눈가리개를 내려놓으면 걸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다.

『아레스와 아테나』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극복의 서사를 택하지 않고, '포기 또한 하나의 방법이며 그랬을 때 열리는 가능성의 이야기'로 끝맺었다. 엄마는 새나에게 또 다른 롤모델이 되어 준다. 새나는 길이 나무 줄기처럼 위로 솟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 있음을 배우고, 자신만의 선택을 해 나갈 것이다. 독자인 우리가 위로와 감동을 받는 것도 끝을 위한 끝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끝을 보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하기 나름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바닷가에 너울너울 퍼지는 웃음소리'에 우리의 실패를 흘려 보내자. 다음 트랙을 향해 가뿐히 걷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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