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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눈뜬다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절대 해선 안 되는 세 가지가 뭔지 알아?
적반하장, 후안무치, 내로남불.'
장편소설 <잠들면 눈뜬다>의 소개 문구다. 소설 본문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하고.
뉴스에 나올 정도의 참사, 개인적으로 타인과 얽힌 불미스러운 사건과 위 세 단어는 밀접하다.
꿀잼소설이나 읽어나가는데 몇 달 전에 내가 겪은 황당한 일이 생각나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힘들기도 했다. 물론 이렇게 끔찍한 일은 아니고 가벼운 마찰이었지만. 버젓이 증거가 있음에도 푼돈에 양심을 팔아넘긴 그 자가 생각나서 힘들었다. 변호사에게 자문까지 구했는데 그 자의 요구에 응한 이유는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고, 밥 한 끼 정도 되는 적은 돈이라서도 아니고, 그 자가 무서워서도 아니었다. 그 자의 양심을 한 번 믿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끝내 내 예상과 빗나가자 거짓말로 윽박지르던 그 자의 모습이 생각났다. 이 소설에 나온대로 그때 그 자의 눈은 호박 눈이었다. 때문에 '호박 눈'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정말 놀라고 극공감했다. 책 리뷰에 이렇게 내 TMI를 쓴 이유는 이 소설은 누구나 겪거나 목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에서 출발한 이야기라 공감하고 돌아볼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다.
술술 읽히는 문장에 인간의 심리를 녹여낸 깊이가 대단하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아치는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이 흥미진진하고. 각 챕터 첫 장에다른 책에 나온 문장들이 나와 있는데 작가의 방대한 독서력과 진중함이 엿보인다. 이 문장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간중간 언급된 리액턴스 효과, 아프리카 원주민이 이야기 등등에서도 탁월함이 빛난다. 바론 이런 게 작가의 역량 같다.
도로에서 최소한의 상식을 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때문에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많은 걸 잃은 부부, 무영과 수정. 둘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이들을 덮친 것은 '미아즈마'라고 불리는, 떠돌며 사람을 헤칠 숙주를 찾는 연기 같은 존재라는 게 밝혀진다. 종잡을 수 없는 미아즈마는 시민들을 공략하고 무영은 이 사건을 맡은, 과거에 미아즈마와 깊은 관련이 있는 프로파일러 예령과 마주치게 된다.
미아즈마가 떠돌며 사람들을 조종하기에 소설은 병렬식으로 전개된다. 펼쳐지는 사건들은 자동차 접촉사고, 응급실에서의 다툼, 영화관 빌런 등등인데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섬뜩하다.
결국 의기투합하게 된 무영과 예령은 미아즈마를 쫓게 되는데..
앞서 몇 달 전에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엮였다고 썼다.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되겠지. 인정하지 싫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몰상식한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있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옳고 내 이익만을 취하려는 게 바로 미아즈마에 조종당하는 게 아닐까? 조종당하지 않은 무영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며 위안을 받았다.
너무 좋아하는 작가라 전작을 다 읽었기에 이 소설에 언급되는 것들이 반가웠다. 늘 도시 이름을 '홍주'로 쓰는 거, 커플이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 제목이 다른 소설 제목인 '손톱'. 작가의 말에 나왔듯 이 소설은 단편 <일방통행>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등등.
브릿G에 연재될 때부터 열독한 소설인데 종이책으로, 한 호흡으로 쫙 읽으니 후련하다.
책 날개에 나온 김종일 작가의 작품 중에 <손톱> 외 다 소장 중이고 다 읽어서 뿌듯했다. <손톱> 개정판도 빨리 나왔으면.
강렬한 여름 뭐니뭐니해도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게 가성비 좋은 여름나기다. <잠들면 눈뜬다>의 결말, 세상은 미쳐 날뛰어도 내 곁의 사람들과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이처럼 날씨는 무덥지만 <잠들면 눈뜬다>를 읽으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 서평단에 선정되어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서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