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원론 - 옛이야기로 보는 진짜 스토리의 코드 대우휴먼사이언스 20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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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뭐길래?
람들은 오늘도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와 드라마와 연극과 웹툰을 보고, 소설과 희곡과 동화를 읽고, 민담과 설화를 듣는다. 오늘날만 그러한가? 지구 반대편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연극과 신화가 역사사를 장식해왔고, 이 땅에서도 신화, 전설, 민담을 포함한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삶속에서 함께 어우러졌다. 도대체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소위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을 가상의 세계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길래, 긴 사람의 역사와 함께 이야기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것일까? 

호모 스토리언스
32인간의 인지는 본질적으로 스토리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은 기저에 스토리가 작용하며 그리하여 현상적으로도 스토리적으로 실현된다.

38 인간의 상상은 제한돼서는 안 된다. 반경 없는 역동적 스토리의 생산이 멈춰서는 안 된다. 진짜 스토리가 계속 만들어지고 소통되고 구현되어야 인간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발현할 수 있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본래 스토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을 '호모 스토리언스Homo Storiens'라고 말하며, 인간이 본래 스토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도 그랬고, 따지고 보면 그 누구의 삶도 그렇다. 모두가 이야기였고 이야기이며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나의, 당신의, 세상의 이야기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스토리에 관한 깊고 넓은 이야기
이 책 '스토리텔링 원론'은 이야기에 관한 총체적 이야기다. 먼저, 경험적 실재를 넘어 상상의 세계로 뛰어드는 스토리적 인간이 갖는 함의를 짚어본다. 이야기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 전설, 민담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의 '원형'을 짚어보고 그 안에 녹아있는 인간의 삶을 들여다본다. 서사의 구성요소인 화소(모티프)에 대해서 알아보고, 나아가 그들이 총체적으로 구성되는 구조론에 대해 서술한다. 후반부에는 앞서의 서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직접 분석하며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더 잘 쓰고 싶은 이야기꾼들에게, 더 잘 읽으며 듣고 싶은 관객들에게, 다채롭고 흥미로운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다.

상징적 설화 vs 구체적 소설
78 설화와 소설은 서로 다른 문학적 지향성을 지니는 이질적인 담화 양식일 따름이다. 소설이 현실적 구체성과 총체성을 지향한다면 설화는 서사적 상징성과 함축성을 지향한다. 소설이 근대적·전문적 양식이라면 설화는 원형적·보편적 양식이다. 설화와 소설은 모두 그 자체로 완전하며 서로 다른 미적·인식적 가치를 지닌다.

저자는 설화와 소설의 우열을 나누는듯한 기존 이론을 비판하며 각자의 완전함을 이야기한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소설의 아름다움이라면, 은은하고 비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설화의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사적 전개의 과정 속에서 두 요소의 특성을 함께 버무려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선호하는 서사'에 대해서 짚어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읽고 들은 스토리 중 깊이 빠져들었던 작품들은 대부분 '설화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상징과 비유속에서 발견과 이입의 놀이를 즐기며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냐'만을 중요히 여기는 줄 알고 있었지만, 어쩌면 '어떻게 말하냐'를 더 중요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무엇'과 더불어 '어떻게'에 주목하기. 다른 파트에서 배운 '화소', '구조분석'과 더불어, 앞으로의 읽기가 더욱 풍성하고 흥미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백설공주에 담긴 원형적 서사
238 이름조차 백설인 저 아이는 순수의 표상이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아이. 백설공주는 순수한 선의와 긍정, 그리고 믿음의 존재다. 어떤 구김도 가식도 없이 마음 그대로 행동하는 존재.

239 간악한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변함없는 순수와 긍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이며, 마침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이 설화의 일련의 전개는 이 인생론적 화두에 대한 서사적 답변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240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와 믿음을 잃지 않고 해맑은 자유와 긍정으로 움직이는 것, 거친 난쟁이를 기꺼이 친구로 삼아 더불어 살아가고, 악의 가득한 노파에게 활짝 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이다. 안에서 우러나오는, 존재 그 자체인 아름다움.

이 책의 후반부에는 다양한 단편 스토리들을 소개하며 전반부에서 다뤘던 이론의 도구들을 통해서 분석하고 해석한다. 스토리의 본문과 저자의 해석으로 이루어진 사례 탐구 파트는 응용과 이해의 측면에서 유익하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어내린 파트였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얼굴이' 예쁜 공주가 시기, 질투 때문에 고통을 겪지만 백마탄 왕자님 덕분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단순한 권선징악 이야기로 기억해왔다. 하지만 이 단조로운 이야기는 인간 삶에 대한 통찰의 시선을 담고 있었다. 백설공주가 가진 아름다움의 근원은 외모가 아니었다. 순수와 믿음과 자유와 긍정이 드러내는 내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로 충분했다. 하지만 여왕은 달랐다. 진실의 거울에게 누가·제일·비교적 예쁘냐고 물었던 그 순간부터 거울의 대답은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혹자는 말할지 모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비교와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냐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 아니냐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고통받고 좌절한다. 구원을 적극적으로 획득하거나 소극적으로 기다리고, 절망속에 포기하고, 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원형의 이야기'는 작중의 서사를 통해 인간의 삶이라는 서사를 투영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공감의 위로와 지혜의 단서를 건넨다. 그 다음은 오로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쓰여진 이야기, 써나갈 이야기
305 이야기는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과정에서 자기 것이 된다. 그 기억과 구성의 과정에 자동적으로 스토리적 인지가 작동하거니와, 그 시간은 곧 우리 자신이 스토리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된다.
이상이 있고 현실이 있다. 상승이 있고 하강이 있다. 극복이 있고 절망이 있다. 구원이 있고 좌절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것이 있다. '상상력.' 나의 좌절과 절망을 기억한다. 나의 이상과 성장과 구원을 소원한다.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가 이야기하는 비유와 상징의 세계에 공명한다. 무한한 상상력은 새로운 창조의 씨앗을 잉태한다. 이제 내가 이야기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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