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 법정의 산중 편지
법정 지음, 박성직 엮음 / 책읽는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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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이전의 이야기
법정스님. '무소유', '오두막 편지'등의 산문집으로로 유명하며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전한 덕망높은 스님.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인용으로 접하게된 스님의 잠언들을 읽고 나의 마음과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의 호기심들은 미처 품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이 청년 박재철을 법정스님으로 이끌었는가? 가족과 사회를 등지고 구도의 길을 떠나가도록 만든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고향에 남은 가족들에게 그는 어떤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을까? 지혜가 깊어지기에 앞서 '배움의 과정'속에서의 깨달음들은, 어떤 언어로 표현되었을까?

애정어린 조언을 담은 마음의 편지
이 책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는 위 질문들에 대답이 되어줄 듯 하다. 이 책은 '편지'의 모음집이다. 속세를 떠나 막 배움의 여정을 시작한 1955년부터 1970년에 이르기까지, 사촌동생에게 전한 편지들을 모아 엮었다. 초기의 편지에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다. 자신의 거처를 밝히지 말라고 하면서도 고향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청년 박재철'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과 삶과 자유에 관한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법정스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적어 내린다. 사촌동생에게 전하는 편지이기에 '애정하는 누군가'를 향한 '진심어린 조언'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법정스님의 삶에 호기심을 갖고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충고와 조언을 기대하는 분들께도,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렸던 키워드를 간추려보자면 '나', 그리고 '삶'이었다.

나 : 내가 나를 키워 나가야 한다.
87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우주 주인은 항상 '나(자기)'라는 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무런 비판 정신도 없는 맹목적인 신앙은 인간 성장에 오히려 큰 해독을 끼칠 우려성이 없지도 않은 것이다. ... 불가에서는 '내가 곧 부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인간의 모양이 잘났다는 데서가 아니라 내가 닦아(수행해서) 깨치면 똑같은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을 다른 것이 아닌 나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생활의 주체는 항상 '나'다.

114 성직아! 하나부터 행하라. 네 주위에 있는 일부터 행으로 옮겨라. 우리 인격 수행에는 무엇보다도 '실행'이 기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형으로서 유산을-생활신조를 주고 싶다. "진실하라"는 것이다. 일체의 생활에 '진실'이면 통한다. 설사 눈앞에 손해 볼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면 그만이다. 결코 거짓된 것과 비굴에 타협하지 말아라. 가령 연애에도 진실이 아니면 그건 죄악이다.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여라. 여기 비로소 인간 성장의 싹이 틀 것이다. 내가 나를 키워 나가야 한다.

117 어떤 위치에 있더러ㅏ도 사람으로서 성실을 다할 것이며 내가 나를 키워 가야 할 것이다. 먹고산다는 이 엄숙한 사실 앞에서 직업의 귀천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 수확의 계절에 우리들은 또 얼마나 여물었는지...

편지 내내 법정스님은, 사촌동생 성직에게 자신이 깨달은 지혜를 전한다. 보통의 형이 동생에게 그러하듯, 도움이 될만한 것은 하기를 권하고 해로울만한 것은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맹목적 신앙을 갖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시대상황, 앞서의 일제강점기까지 거친 후이기에 더더욱 '진리'와 '가치'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정해진 '진리'나 사회적 흐름에 따라서 사는것이 속편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주체로서의 '나'를 강조한다. 생활의 주체는 오로지 '나'이며 내가 나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혼란'스럽기로 치자면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가치와 신념이 유행처럼 달라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따라 살아가야 할까? 법정스님의 애정어린 조언을 따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아닐까? 

삶 : 초연한 수도승보다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다
132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하나의 무표정한 직업인이 된다는 것이다. 해서 나는 초연한 수도승이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인으로서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가 되고 싶을 뿐이다.
불교 중에서도 종교적인 면은 나를 질식케 하지만 철학의 영역만은 나를 언제까지고 젊게 하고 있지. 물론 사회인에겐 살아가는데 직업이 필요할밖에. 하지만 인간 본래의 양심이라든가 의지를 잃어버리고까지 거기에 얽매일 건 없을 줄 안다. ... 우린 생존만으론 살고 있는 보람이 없어. 줄기찬 생활이, 창조적인 생활이 있어야 해.

144 한 가지 기억해 둘 것은 인생이 상품 거래와 같은 장사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얼마의 밑천을 들였기에 얼마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인간을 생명이 없는 상품으로 '오산'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저 성실하게-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내려 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는 생명의 존엄 앞에 문제가 되지 못한다.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155 나는 가끔 자신을 반성할 때가 있다. 직업인인 수도인은 되지 않겠노라고. 지금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만 개성을 잃어버린 무표정한 군인이 될까 싶다는 것이다. 물론 단체생활의 규율 같은 것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는 맑고 여유 있는 눈망울을 잃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법정스님이 전하는 조언은 종교적 지혜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보다 삶에 더욱 가깝게 맞닿아있다.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촌동생에게 전하는 조언이기에 그런면도 있겠지만, "초연한 수도승이기보다 진리를 모색하는 철학도이고 싶다"는 스님의 말이 담고 있는 가치관에 따른 면이 더 클 것이다. 개성을 잃어버린 무표정한 직업인,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푸른 하늘을 즐길 수, 맑고 여유 있는 눈망울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즉, '생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삶의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글쎄, '생기'를 잃어버린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싹틔우는 것이 바로 '생기'가 아닐까? 생존을 넘어 의미로, 의미를 넘어 생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거울을 꺼내들고 관찰한다. 나의 얼굴은 표정을 담고 있는지, 생기를 담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무슨 일을 하든 결코 무표정한 직업인으로 남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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