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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힘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순수한 대면으로 향하는 길, 글쓰기
누구나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한다. 누군가는 해결하려 한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모색하며 해결책을 도출하고자 애쓴다. 누군가는 피한다. 취미 활동을 하거나 다른 일을 통해 문제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고자 한다. 어떤 이들은 과도한 회피 속에서 '중독'이라는 늪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 '옳다'거나 누군가가 '틀렸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단 한가지의 선물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것을 전하겠다. '문제와 순수하게 대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방법으로서의 '글쓰기'다. 곧 글을 쓰기 위한 '종이'와 '펜'이다.
삶의 고비를 극복하는 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첫번째 과정은 바로 '문제와의 대면'이다. 문제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기 자신과의 '온전한 마주함'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자신을 만나고 이해하고 안아주기 위한 가장 순수하며 간편한 방법이다. 이 책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는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말하고 권한다. 저자인 '셰퍼드 코미나스'는 오랜기간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려왔다. 통증클리닉에서 받은 처방은 생뚱맞게도 '일기쓰기'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일기쓰기는 귀찮음과 핑계속에 좀처럼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절망적인 기분 속에 미친 듯이 휘갈겨 쓰기 시작했고 오후 내내 일기를 쓰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완전한 몰입속에서 내면의 생각과 정서를 토해냈던 것이다. 그 날의 일기는 저자에게 후련함과 평안함을 제공했고 그렇게 저자는 평생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형님과 부모님의 잇단 죽음, 자동차 사고, 이혼, 폐암 진단과 같은 인생의 고비들을 의연하고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왜 써야 하는가, 어떻게 쓸 것인가
책은 총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파트1.나를 위로하는 글쓰기의 시작>에서는 치유를 위해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글쓰기를 위해 유용한 팁들, 흔하게 경험하는 어려움과 대응방법을 다룬다. <파트2.치유를 위한 글쓰기>에서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치유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 글쓰기가 주는 유익함에 대한 과학적 탐구들, 치유를 포함하여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힘'들을 말한다. <파트3.치유의 글쓰기 연습Ⅰ>에서는 치유의 글쓰기를 위한 소재와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글쓰기에 대한 막연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실용적이고 친절한 가이드라고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파트4.치유의 글쓰기 연습Ⅱ>에서는 글쓰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확장을 이야기한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검토하고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창조해나가기 위한 글쓰기 제안이 담겨있다. 더욱 간결히 요약하면 이렇다. '왜 써야 하는가, 어떻게 쓸 것인가.' 마음같지 않은 삶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안아주고 사랑하며, 삶을 창조해나가기 위한 든든한 친구로서의 '일기'를 만나보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글쓰기가 이끄는 치유의 과학적 근거들
77 (...) 사고, 감정, 행동을 억압하고 금지하려면 생리적인 노력이 요구되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 대해 반응을 억제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면 몸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스트레스가 인체에 생물학적 변화를 몰고 오고 이런 변화는 육체적, 심리적으로 고통을 심화시키게 된다.
77 (...) 감정의 격동을 글로 쓸 때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건강이 현저히 나아진다는 사실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의 뇌파 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더 희망적이다.
그는 자신의 정서적인 상처에 대해 글로 쓰면 우뇌와 좌뇌의 뇌파 활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묹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페니 베이커 박사가 내린 결론은 한마디로 이것이었다.
"글쓰기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79 문제에 정면으로 맞설 때, 당사자는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가 될 수 있으며 더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써 더욱 능동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새로운 시도를 시작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대되는 효과를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의 시작은 오래된 타성과 습관에 의해 방해를 받기 마련인데, 이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떠올리며 첫 발걸음의 추진력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체적 효과를 기억하고 상기함으로써 마음의 태도를 분명히 하면서 기대감을 고취할 수 있고, 실제적 효과를 끌어올릴수도 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앨런랭어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단순노동을 하면서도, 기계적으로 무심코 일 한 사람에 비해 업무를 통해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운동의 효과를 배우고 떠올린 사람들의 건강이 확연히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글쓰기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탐구들은 나에게 의미있는 배움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자에 따르면 글쓰기는 억압과 회피가 유발하는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이끌어내고, 당면한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쓰는이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개선하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더 나은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범주와 방향에서 글쓰기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과학적 근거와 함께 제시한다.
대면과 수용을 거쳐 해방과 치유로, 그리고 자유로
92 치유는 수용과 더불어 시작되고, 희망이 치유의 가능성을 활짝 연다. 희망이 보이는 순간 치유의 가능성은 사방에서 몰려든다.
109 어떤 사람들은 불쾌한 것을 피하는 데 능숙하다. 불쾌한 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중독 행위와 강박적인 행동의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자기부정이다. 하지만 부정과 회피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면에서 당신의 인체 시스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부정을 통해 내면의 것들을 억압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 붓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맘껏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인생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한다. 부정은 인생을 나락에 머물게 하지만, 정직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단계임을 명심하라.
117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배려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배려만 생각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리 없고,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쏟을 리 없다.
당신이 하는 것, 당신이 가진 것, 당신이 느낀 것, 당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당신을 과소평가한다며 모욕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큰 모순인가?
나의 모두를 용납합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갖고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취하는 방식이 '회피'다. 물론 아픈 고통을 주는 상처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잠깐의 응시로도 고통스러운데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외면한 상처는 결국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불현듯,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행복을 가로막고 지금 여기의 나를, 그 날 그 곳의 상처앞에 던져놓는다. 이런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페니베이커 박사의 말을 인용하여 말한다.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을 용납하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사고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라고. 건강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것'과 만나게 되어있다. 예기치 않은 삶의 길목 어딘가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기 위해 똬리를 틀고 기다릴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단단한 준비와 함께, 내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든든든한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만나보는 것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비록 고통스럽고 두렵겠지만 말이다. 펜과 종이가 그 용감한 응시의 대지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다.
저자의 해방, 나의 해방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의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기의 힘을 믿지 않던 어느 날 무아지경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해방감과 평온함을 느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앞에서 다루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놀라운 감정에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저자와 똑같은 경험을 얼마 전 겪었다.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한결 가벼워졌다. 조금은 힘을 빼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 시작한 최초의 글쓰기는 일종의 '메모'로서, 일상을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장단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나 구매목록을 기록하는 노트를 작성하고 기록했다. 얼마 뒤, 자기이해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하고싶은 것들을 기록함으로써 달성하고 획득하는 즐거움을 늘려갔다. 이 모든 글쓰기는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글쓰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없이 나는, 과거를 향한 글을 쓰게 되었다. 후회와 자책, 두려움과 불안과 같은 부정적 정서들을 직접 대면하고 그 날의 나와 화해했다. 아니, 친절과 연민으로 돌봐주기로 했다.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회피와 거부에서 수용과 이해로, 감정과 태도의 변화는 나에게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65 안네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원했던 정상적인 삶을 대신한 것은 일기였다.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있는 한, 내가 그 햇빛과 하늘을 볼 수 있는 한, 나는 결코 슬퍼질 수 없다.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하늘은 짙푸르고, 바람은 달콤하게 불어온다. 나는 욕망을 느낀다.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강제수용을 피해 작은 다락방에서 2년을 숨어 지냈던 안네 프랑크는 일기를 통해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인간의 역사 속 이름이 알려진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고,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왔을 것이다. 곁에 있기에 무심해지는 가족과 친구처럼, 항상 그자리에 있어왔기에 소중함을 잊게되는 자연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치유와 회복과 자유와 풍요로 이끌, 소중한 또 하나의 '친구'를 너무나 쉽게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쓰려한다. 내일의 나를 창조하며, 오늘의 나를 사랑하며, 어제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돌봐주기 위하여. '인내'는 쓰겠지만 '쓰기'의 끝은 달콤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