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에 반대한다 -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아르노 그륀 지음, 김현정 옮김 / 더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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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11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우리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다. 사태가 일단락되고 일본 국회의 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구라카와 기요시는 사고 발생원인에 대해 예상치 못한 견해를 제시했다. 사고의 원인은, 일본 감독관청의 입장과 원자력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입장이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위가 담긴 상부의 지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복종'이 사태의 숨은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이웃나라만의 일일까? 분노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잊을만 하면 벌어지는 요즘이다. 조금만 더 '의문'을 던졌더라면,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복종'하지 않았더라면,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낼 수, 숱한 슬픔과 아픔들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 '복종에 반대한다'는 제목에서 저자의 신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저자는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아르노 그륀.' 그는 1923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나치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야만의 시대였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유대인을 향한 인권탄압, 그리고 그것에 의심없이 복종했던 보통의 사람들.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저 그들이 '사악해서'라고 규정하고 비난한다면, 간결하고 속시원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른 원인은 없었을까? 그렇다면 그 원인이 오늘의 우리에게 작용함으로써, 우리 역시 무책임하고 무자비한 맹종의 폭력을 휘두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6 우리는 이성적 사고를 통해 무비판적인 복종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생각이나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나 어머니의 제압적인 힘을 통해 우리에게 깊이 뿌리박힌 하인 근성이다. 어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하인 근성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며, 부모가 우리에게 휘두르는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 부모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존재,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만을 바라는 친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의 하인근성은 부모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 아동기의 과도한 억압이 개인의 정체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나치 독일 시대의 시민들이 자라온 성장배경을 짚어보며, 그들이 행한 비상식적 복종 뒤에 숨어있는 '인과성'을 확인한다. 문제는 그들의 '악함'이 아니라 아동기의 성장배경이었던 것이다.

26 우리는 끊임없는 생존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생존 경쟁으로 표현된다. 이 생존 경쟁의 목표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삶'이라는 것은 아주 불합리하다. 두려움을 잠재우거나 거부하면 인간에게서 원초적 생명력을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과 느낌, 인간적 동정을 표현하는 삶 대신, 그 자리에 무력감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똬리를 튼다. 그리고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뿌리깊은 '하인 근성'이 일으키는 문제는, 명령과 지시에 의해 타인에게 휘두를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 해소되지 않은 욕구와 무력감에서 발현된 불안감은 공격자와 자신에 대한 동일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압제와 폭력을 정당화시키며, 자발적으로 다른 약자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 사이의 서열을 공식화하는 권위주의 문화, 자녀를 소유품처럼 취급하는 부모들, 뿌리깊은 군대문화 등, 오늘의 우리 역시 '복종'이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음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면에, 만연한 당위와 복종에 의해 자기로부터 소외될수밖에 없다는 본질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101 복종에 예속되어 자신의 뿌리를 상실함으로써 무력감을 느끼게 된 인간은 권력과 소유권을 다시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로 인해 정신적 압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며, 이는 노이만이 말한 것처럼 '죽음의 무도'로 이어지는 순환의 시작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것' 보다는 '타인이 어떻게 볼까'에 무게중심을 둔 채 살아왔다. 그것은 분명히 '배려'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안전'을 지향하는 '순응'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일부분은 분명히 소외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소중한 나의 행복의 기회도 함께 흘러나갔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뒤늦게라도 복종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공감능력을 강조한다. 용기와 관심, 열린생각이 지닌 힘도 일깨운다. 

내 안의 소외된 나를 돌보며, 복종의 압제에 소외된 타인을 발견하며, 공감과 용기의 힘으로 언제까지나 '복종에 반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인용]
60 권위에 매달리기 위해 자신의 본질을 억누르면 증오와 공격성이 생겨난다. 문제는 이런 증오와 공격성의 대상이 억압자가 아닌, 다른 희생자를 향한다는 것이다.

89 복종은 권력의 토대를 마련한다. 그리고 분노를 유발시킨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쌓지 못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분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권력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타자로 만들어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증오도 똑같이 그대로 존재한다.

126 복종은 파괴적이다. 또한 복종은 사고를 제한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현실 전체는 그저 권력자의 단기적인 전망에 따라 제한되고 한정될 수 없다. 더 나은 세상은 유토히아의 환상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는 현혹된 복종이 사람 사이의 진정한 공감으로 바뀔 때 눈 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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