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감정과 감정적 상황이 등장합니다. 원치않는 감정을 강요받는 사람, 과거의 부정적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공허함을 겪는 사람, 질투나 시기, 짜증과 분노, 슬품과 우울, 불안과 공포, 좌절, 수치심과 죄책감 등이 그것입니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이것들과 떨어져있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그러한 감정들때문에 고통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3.실용성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서 이 책의 장점으로 쉽고 재미있음을 소개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감정들의 근원, 의미, 메세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태도, 방향성등을 알차게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이기보다 직관적으로 표현된 담백한 메세지가, 감정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를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읽기:전반적인 이야기]
누구나 한 번 쯤은, 혹은 그 이상 여러차례 감정의 문제로 힘든 시기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시기를 겪은적이 있습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위대한 사상가와 철학자,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신경과학자들의 저서에서 도움을 받았고 그 중 한가지 개념을 꼽자면 고민끝에 이것을 집어들 것 같습니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부정적 정서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해당 정서를 나 자신과 일원화시키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대상, 나아가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분리하여 바라보는 태도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은 어느새 '바라봄'의 태도를 잊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자신을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내가 아니다'를 넘어 마음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다양한 감정들을 구분하고 각자의 감정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개별 감정들에 맞춤화된 효율적 인지태도를 구사할 수 있다면, 한결 여유롭게 감정들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감정이 보내는 메세지들을 여유롭게 수용하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에게'는 감정을 마주하는 방법을 다루는 책입니다. 때때로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하는 감정,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는 합니다. '저 사람은 참 감정적이야'라는 표현이 마치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당위적 요소가 결핍된 사람처럼 사용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감정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일까요? 어쩌면 그 너머의 무엇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은 아닐까요? 그 신호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행동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채워나갈 수 있지는 않을까요? 저자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피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 개선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한 실용적 방법론과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이 책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에게'의 독서는 저에게 매우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마음을 흔들어놓고는 하는 개별감정들을 담대하게 바라보고 나아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된 즐거운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정으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낸적이 있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가까이 읽기:인상적인 구절 / 생각]
91 자신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실패나 실수에도 자신을 탓하기보다 문제를 분석하고 재도전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은 무한한 선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결정으로 내리고, 자신의 선택에 몰입할 수 있으며, 선택 후에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유행하기 오래전부터 나는 늘 망설임과 함께했다. 이 글을 읽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긴 망설임의 너머에는 '자신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보에 대한 나의 해석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된 정보에 대한 나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판단이 가져올 상황에 대한 나의 즉흥적 대응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완벽한 결과'만을 기대하며 선택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부터 '이것'을 삶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가 시작하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즉흥', '즉흥'에 따른 '직관'의 삶이다. 삶은 즉흥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게된 것이다. '완벽한 결과'를 위한 '완벽한 과정'만을 따르는 삶, 그것은 '삶'이라기 보다는 '배역'에 가까울 것이다. 어설프고 미숙하더라도, 그런대로 자신을 믿고, 완벽하지 않은 판단과 결과의 접점에서 즉흥의 삶을 이어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삶'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욱 자신을 믿도록, 무한한 선택이 가벼운 미소와 함께하기를 기대해본다.
268 수치심과 달리 죄책감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나 사고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따라서 수치심과 마찬가지로 부끄러움과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만, 그 화살이 자기 자신을 향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평가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준비할 수 있죠.
죄책감의 화살은 '내'가 아닌 '상황'과 '행동'이기에, 건강한 죄책감은 자신을 둘러싼 타인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공감능력을 통한 인간관계 유지에 도움이 됩니다.
'죄책감'은 내가 가진고있는 또 다른 단점이다. 조금이라도 예상한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당연히 자책하고, 예상치 못한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는 나의 무능함을 자책한다. 열심히 수행한 결과가 나쁠때는 더더욱 무능함이 강조된다. 자책에 소모될 시간과 에너지로, 당면한 상황을 개선하거나 배움을 얻는것이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게 마음같이 되지는 않았다. 감정을 '벗어나기'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구절의 독서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그 죄책감을 내가 아닌 행동이나 사고에 적용하라는 것이다. '내'가 행위를 한 것이지만 내가 '행위'를 한 것이기도 하다. 아쉬운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값진 경험으로 삼는것이 최선의 대응이다. 그러기 위해서 위의 관점전환은 당장의 감정을 도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유용한 기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77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의식과 스스로에 자신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습니다. 이 높은 기준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 해야하고 좀 더 긴장하게 되죠.
더불어 실패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스스로도 버티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무언가 시도하는 여유보다는 주로 계획에 시간을 소비하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신적 소모로 인하여 긴장과 무기력이 반복되는 조급증을 띄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수하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당장이라도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무엇이든 돕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나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볼 때는 어땠는가. 그것을 감싸주고 채워주려고 하기보다는 외면하고 감추기 급급하지 않았던가. 극복과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은 응시와 대면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한 기간이 길었다. 나의 부족함을 수용하며, 너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삶을 바라보는 명랑함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