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스스로 '보통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서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분들께
2.'삶의 허무함'에 대한 번민을 갖고있는 분들께
3.'자기다운 삶'을 쫓고있는 분들께
4.예술이 삶에 필연적이라고 믿는 분들께
5.'마음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고있는 분들께
6.프리디리히 니체를 좋아하는 분들께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병과 고통이 주는 메시지
2.마음과 머리, 몸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
3.인간의 나선형 성숙과정

[이 책의 장점]
1.모두를 위한 이야기
'뿔 잘린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뿔'을 가지고 태어났다. 뿔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임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보물로, 태생적 자질을 말한다."
이 책은 마음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은 '정신질환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정상과 이상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적 통념을 뒤집는다. 자신다움을 잃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통념적 억압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다움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 정도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자신다움을 잃게된 모두를 위한, 자신다움을 되찾게될 모두를 위한 책이다.

2.마음을 위한 새로운 실마리
이 책은 우리의 통념을 건드린다. 정상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을 부수고, 병과 고통을 선물이라 말하며, '힐링'의 풍토를 유혹이라고 말한다. 기꺼이 고독과 대면하라고 말한다. 정신과의사인 저자는 우울증 치료에서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충분히 쉬고, 무리하지 말고, 꼬박꼬박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는 '치유'가 아닌 '완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치료는 필요하다. 하지만 재발의 가능성을 소멸시키며, 궁극적인 자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 책은 자립을 위한 내면의 성숙 과정을 다룬다.  

3.다양한 읽을거리
10강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저자의 주장을 부연하고 지지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함께 등장한다. 니체, 파스칼, 셰익스피어, 프로이트, 루소, 조지프 캠벨, 에리히 프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옥타비오 파스 등 역사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각자의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들의 '살아있는 말'들은 흥미와 재미, 위안과 지혜를 더해준다.

[생각]
여기 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하나,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편집권을 획득한다. 둘, 한 사람의 독특한 특질을 발견한다. 셋, 그 특질을 DSM에 추가한다. 이렇게 한 사람은 정신질환자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가볍게 이야기했지만, 물론 '병리'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다룰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노력으로 한 분야의 권위를 획득한 전문가들이 수립한 병리체계는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권위'와 '전문성' 때문에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을 놓치게 될수도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ADHD', 'ADD', 우리의 마음은 현상에 따라 하나의 진단으로 라벨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쉽게 그 분류체계 안으로 자신을 한정짓고 있는것은 아닐까? 눈앞의 증상에 대응하는것에 급급한 나머지, 그 너머의 본질과 마주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으로써 표면적 고통 너머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던 것은 아닐까?

울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울음을 그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표면적 현상이다. 뽀통령이 나서서 일시적으로 울음을 멈출 수 있게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너머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이의 불안은 언제든 필연적으로 터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고픈 배를 채워주든, 기저귀를 갈아주든, 잠을 재워주든,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든, 아이의 내면에 자리한 근본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길일 것이다.

이미 다 자란 우리의 내면에도 어김없이 '어린아이'가 존재한다. 우울과 절망속에 괴로워하는 이에게 SSRI를 통해 시냅스내의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함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유도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너머의 문제다. 내면의 아이를 울도록 만든 '그 너머의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울음은 언젠가 또다시 터지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 대면의 여정은 오로지 나 자신만이 걸을 수 있다.

이 책 '뿔을 가지고 살 권리'는 일본의 정신과의사에 의해서 쓰여졌다. 카운슬러나 의료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를 토대로 썼지만, 결코 전문가를 위해서 쓴 책은 아니라고 한다. 각자 다른 '뿔'을 가지고 태어난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여기서 '뿔'은 우리가 우리 자신임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보물, 태생적 자질을 말한다. '눈의 보이지 않는 뿔의 절단'이 만연한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가, 성장과 성숙이라는 긴 여행을 통해 자기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말한다.

26 억압당한 것을 갈등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면 충분히 의미 있는 치료가 된다. 의뢰인은 ‘병이 나으면 개운해져 고민도 없고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야 할 고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낫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억압하고 있을 때는 ‘병적인 안정’이라 할 수 있다. ‘병적인 안정’에서 ‘건강한 불안정’으로 옮겨가는 작업, 그것이 치료의 본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나 ‘힐링’이라는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29 진정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잠재한 힘, 자고 있는 지혜가 꺠어나 움직일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다. 예술도 문학도 그리고 의료나 교육도 사람들의 자각을 일깨워주는 요소를 갖춰야 한다. 사람이 깨우치고 변화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바로 자립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고통과 절망도 삶의 긴 흐름에서 보면 하나의 선물일 수 있다. 치유와 자립을 위해 언젠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마음속의 응어리를 소멸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 문제는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 그런 의미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신자원을 잠식하고 있는 절망이라는 감정의 덩어리가 희망의 떠오름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때일수록 '단 하나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99도에서 1도가 올라 물이 끓듯, 절망에 더해진 약간의 절망이 한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을수도 있다. '그래서' 절망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 '고통이 주는 의미'를 기억하는 것은 작지만 큰 힘이 될 것이다.

177 '즉흥'이란 제멋대로이고 부실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즉흥'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방식이다. 충분히 사전 준비를 한 뒤에 즉흥성을 중시하는 것은 단순히 부실하고 무계획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진실로 음미했다면 미리 써둔 원고가 자유로운 이야기의 확대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것은 연극이나 음악, 미술, 요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음악을 배우며 '여기는 이렇게 해석해서 연주해야 한다'는 지도를 받고 그것에 얽매이면 실수는 하지 않을지 몰라도 영혼을 울리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연주밖에 하지 못한다. 즉흥성의 상실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여러 문장들이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위의 문장이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고있다. 그래서 당면한 과제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래서 성과가 좋을떄는 아주 좋은 반면, 중간의 작은 변수가 평정심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의 완벽추구는 무엇을 위한 완벽인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그것이 완벽한 것인가? 이상적 역할이 정해져있고 그 역할을 짜여진대로 수해하는 것이 완벽이라면, 완벽한 것은 나인가 역할인가? 역할극 속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마주하는 순간은 오로지 '현재'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미래를 계획하고 메뉴얼을 참조하되, '즉흥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삶을 생생하게 하며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해줄 것이다. 

132 사랑과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강요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에 둔감하다. 게다가 흔들림 없는 그 생각 이면에 상대에게 '감사받고 싶다'는 '욕망'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감사받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것도 역시 상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제어 지향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 일이니 부디 너그럽게 봐달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해서도 다룬다. 물론 에리히 프롬의 말도 인용한다. 위의 구절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너를 위해서'하는 행동이 상대에게는 더욱 큰 억압과 부담과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도의 선함은 결과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따라서 최선의 결과를 위하여 숙고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한편으로는 '너를 위해서'라는 표면의 선의 뒤에, 감사를 받고자 하는 '이기적 욕망'이 숨어있는것은 아닌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너를 위한다면 선의에 대한 대가를 원하지 않는것이 맞다. 대가가 돌아온다면 그것이 감사한 일일 것이다. '선의' 갖자. 그러나 '선의'를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 그 언어의 무게감과 진심의 의미를 기억하는 사람이 되자. 

116 의뢰인이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올 때는 누구 할 것 없이 '낙타인 것에 지쳐 있다'거나 '사자가 되었지만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상태다. '사자가 되었지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격적', '충동적', '빈번한 문제 행동'을 지적받고 주위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는 '분노'로 자신을 획득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얼핏 주위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이 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중요한 '분노'를 치료사가 존중할 수 있는지 여부가 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분수령이다. '공격성이 강하고 충동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면적인 모습만을 보고 우격다짐으로 낙타로 돌려보내기 위한 치료를 하게 되면 '부패한 낙타'밖에 낳지 못한다.

이 책은 그 유명한 니체의 '차라투스타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인간의 3단 변신을 인용한다. 낙타가 사자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다. 낙타는 순종, 인내, 노력, 근면을 상징하는 맹목과 복종의 단계이다. 낙타는 '나는 해야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 단계 성장하여 사자로 변신한다. 복종의 대상과 싸워 자유를 획득하며 주체성을 획득한다. 그리고 '나는 원한다'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 단계 성장하면 어린아이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이고 창조적 놀이의 유희를 즐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니체 스스로 '모두를 위한 책이며 그 누구를 위한 책도 아니라고' 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의 이 구절은 나의 어려운 시기에 큰 위안이 되었다. 내가 겪고있는 절망이 '하나의 과정' 임을 확신하게 해주는, 그럼으로써 깊은 위안을 주는 이 구절은 고난의 시기를 경험하는 모두를 위한 구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17 세상 대부분의 어른들이 훌륭한 낙타가 되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사자에 눈을 뜬 인간은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에게 낙타에서 사자로 변모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든든한 의지가 된다.

이러한 3단 변신을 인용하여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공격성도, 지금의 충동도, 지금의 분노도, 자신을 획득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일 수 있음을 열어두는 것이다. 고통이 주는 의미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희망을 향한 의지를 더해갈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나가며]
저의 뿔을 사랑하며 살 것입니다. 타인의 뿔을 존중하며 살 것입니다. 여러분의 뿔은 안녕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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