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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품고있는 분들께
2.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호기심을 안고있는 분들께
3. '과연 인간은 이기적 존재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있는 분들께
4. '인간'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있는 분들께
5. '유발하라리'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를 인상깊게 읽은 분들께
6. 특별한 인문학추천도서를 찾고있는 분들께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인간 진화의 역사
2. 인간 진화의 발견사
3.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인간 탄생까지의 간략한 이야기
4. 인간과 예술, 인간에게 있어서 예술의 의미
5. 인간과 이타심에 관하여
[이 책의 장점]
1. 풍성함
이 책은 간략하게는 우주의 이야기부터 심도있게는 인간의 이야기까지, 137억년의 역사를 다룬다. 구체적으로 다루는 인간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260만년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 진화 과정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고 짚어보는 긴 흐름은, 독자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각각의 챕터마다 친절하게 배치된 삽화, 도판, 이미지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재미를 더한다. 적어도, 지루할 틈은 없다.
2. 서사의 흐름
인간의 진화를 다루며 '기획하는 인간'에서부터 '종교적 인간'까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을 다룬다. 시대별 인과관계를 짚어보며, 하나의 인간형이 다음의 인간형에 미치는 영향을 연계하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관되면서도 다채로운 인간형의 서사는 독서의 호흡에 리듬을 더한다.
3. 사색과 탐구의 기회
'나'라는 인간이 탄생하기까지 다양한 인간형이 존재했음을 짚어보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깊은 사색의 장을 제공한다. 내 안에 내재해있을 다양한 인간형의 모습들을 안으로부터 짚어보는, 성찰과 탐구의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
나는 아직 종교가 없다. 나는 ‘아직’ 종교가 없다. 나는 종교적으로 살기를 희망하는 미종교인이다. 무한한 우주에 던져진 유한한 존재로서의 불안은, ‘경전’이라는 절대적 지혜를 갈망하게 만들었다. ‘절대자’라는 의지처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혜의 부족 때문인지 믿음의 부족 때문인지 기회의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그도저도 아닌 이유에서인지 기성 종교에 대한 신앙은 깊게 자라나지 않았다. 기성종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나의 주변에는 풍부한 지혜와 존경스러운 인품을 가진 종교인분들이 여럿 계신다. 그러나 내가 신앙을 갖는것은 조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고 ‘내 삶의 의미’를 설정한다는 것은 내 존재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문제인 만큼, ‘이해’를 넘어서는 ‘울림’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울림으로 인해 스스로 신앙에 필연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직 종교가 없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나 자신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다. 경전이 없는 만큼 나만의 준칙이 필요했다. ‘의미체계’와 ‘가치체계’, 그에 기반한 ‘신념체계’를 수립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위해서는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대변되는, ‘자기이해’다.
이 책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 책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속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무엇인가, 그 인간종은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그 진화과정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인류의 조상이 나타나기까지 우주는 어떠한 여정을 거쳐왔는가. 질문이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독서'라는 형식의 탐구과정은,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 걷는 ‘자기 이해의 위대한 여정’ 이기도 했다. 나아가 ‘내 삶이라는 위대한 여정’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얻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이기도 했다.
35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관찰하면 할수록 그 놀라움에 매료된다. 경외는 과학자들을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로 자극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별이다. 우리는 이 빛나는 별을 통해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책의 1부는 우주의 탄생과 더불어, 우주 안에서 인간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 다룬다. 1부의 시작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어록이 인용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입니다. 신비는 모든 진실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지만, '우리의 존재'가 과연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너의 존재는? 공간의 존재는? 시간의 존재는? 우주의 존재는? 모든 것이 신비다. 진실한 예술과 과학은 그러한 신비로부터 발현된다. 무한한 우주에 던져진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나'와 '세계'와 '나와 세계의 관계'를 새로이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162 호모 에렉투스는 요리를 시작하면서 사냥한 동물을 그 자리에서 잡아먹거나 혹은 다른 맹수가 남긴 사체를 청소하는 수준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스스로를 억제하는 자제력을 가지고 됐다. 사냥한 동물을 그 자리에서 먹기보다 가족들이 사는 동굴로 가지고와 화로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교양'이 생긴 것이다.
인간은 불을 길들이면서 점점 자신 또한 길들이기 시작했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행위는 오래된 습관을 과감히 폐기하도록 만들었다.
2부는 최초의 도구제작 이후의 인간을 다룬다. 기획을 하고, 불을 다스리고, 달리며, 요리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는 인간의 성장 과정을 그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살펴본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우리의 행위들이, 사실은 긴 진화 역사에서 창의적이며 선구적인 행위를 통해서 얻어진 사실이라는 점은 내 일상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요즘은 일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지만, 달리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이다.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누군가를 미워하던 마음이 이해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달리기가 사냥을 위해 '호모 에렉투스'가 획득한 기술이라는 것은 나의 행위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최초의 러너에 대한 경외심과 고마움을 품어보기도 했다.
164 아슐리안 석기에는 호모 에렉투스의 혁신적인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아슐리안 석기 제작자는 자신의 생각을 물건으로 만든 최초의 혁신가이며 예술가다.
이 책에는 역사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사례와 도판과 사진자료들이 등장한다. 특히 '아슐리안 석기'는 한국사를 공부하며 여러차례 사진과 사례로 들어왔던 내용이다. 예전에는 수많은 '암기사항'중 하나였던 정보가, 인간의 위대한 여정속에서 창조된 예술적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그것은 더이상 암기거리가 아니었다. 앞으로 역사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분명 예전과는 다른 태도를 지니게 될 것 같다. '정보단위'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마주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358 라스코 동굴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의 예배당이었다. 매머드와 인간을 그린 후진은 그들의 지성소였다. 그들은 이 지성소에서 사냥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깊이 묵상했다. 죽어가는 매머드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다.
이 마음이 바로 이타심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현생 인류가 단순히 '살해하는 인간'을 넘어 '묵상하는 인간'이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인류의 역사는 성찰과 묵상을 통해 자기 안의 이타심을 발견하고 그 소중한 마음을 지키고자 노력해온 여정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국 오늘날 우리를 만들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고 책장을 덮던 순간을 기억한다. 두 눈은 풀렸고 입은 벌어졌으며, 어깨는 늘어졌다. 인간 진화의 핵심이 '이기심'이라니. 우리를 미소짓고 눈물짓고 감동하고 환희하게 하는 이타와 희생 역시, 이기심에 기반한 '호혜적 이타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우리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가 해온 감동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경외감은 무엇인가? 아니,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한한 우주에 던져인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결국 '이기'와 '생존'일 뿐인 것인가?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나는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어록을 통해서다. 과학은 새로운 증거에 따라 갱신된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넘어가듯, 뉴턴역학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의해 보완되듯, 언제든지 재해석 될 수 있는것이 과학이다. 또한 인간진화에 대한 해석은 꽤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단언'에 따른 '혼란'이 아닌 '앎'과 '성찰'이다. 그럼으로써 어제보다 오늘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의 3부는 17만6천년전, '의례하는 인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조각하고, 그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묵상하며, 동물들과 교감하고, 더불어 살며, 종교적 행위에 나서는 인간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무자비한 생존 기계가 아닌, 이타심을 품은 존재임을 확인한다. 라스코 동굴 벽화에 표현된 매머드 사냥 벽화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죽어가는 매머드의 고통을 교감하고 예술적 상상력으로 재구현한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이 가진 근원적 이타심과 예술적 기질을 깊이 성찰해보게 되었다.
411 그들은 처음으로 하늘의 빛나는 별보다 더 빛나는 위대함이 자신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인도할 북두칠성을 밤하늘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발견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시와 노래와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말해왔듯이, 우리는 내면의 깊은곳에서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다. 위대한 여정의 기간을 통해 우리는 생존을 위해 거듭나 왔으며, 생존과 관계없이 교감하고 공감해왔다. 스스로 동굴로 걸어들어가 내면의 빛을 발견한 순간이야말로, 인간 진화의 위대하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나가며]
내가 즐겨듣는 '다이나믹 듀오'의 '진격의 거인 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등장한다.
"또다시 손에는 펜을 쥐고 동굴로 나를 밀어 넣는다
펜 끝과 종이의 접점에 담어 내 진심을
기꺼이 들어간 어둠에서 발견해 작은 빛을
내 맘 속에 휘어진 물음표 고리가 일어날 때 쯤 평온하게 영원 안에 누워 잠들기를"
위대했던 선조들이 해왔던 일들을 기억하기로 한다. 나 역시 스스로를 동굴로 밀어넣을 수 있는 담대함과 용기를 갖춘 사람으로, 진심어린 성찰을 통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또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