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런 분들게 추천합니다>
1.절망의 시간을 겪고 계신 분들게
2.절망의 시간을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3.타인의 절망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희망하는 분들께
4.타인의 절망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게
5.문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고민하는 분들께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망의 시기에 이야기가 주는 의미
2.저자가 권하는, 절망의 시기에 읽어볼만한 이야기
<이 책의 장점>
1.담백함
이 책의 문체는 담백하다. 저자는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수려하지 않지만 담백한 표현과 담담한 고백이 담긴 문체가, 진정성있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은, ‘저자가 참 책을 많이 읽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보편성
세상에 단 한 순간이라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 각자의 상황은 다를지라도, 같은 상황을 겪은 각자의 체감은 다를지라도, 누구나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절망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절망의 상황을 이겨낸 이들에게, 절망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이들에게, 모두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3.다양성
그 보편적인 절망을 다양한 이야기들로 풀어낸다. 다양한 현실 세계의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세계의 이야기를 통해 적어내린 절망에 관한 이야기들은, 각자의 독자들에게 각자의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서평>
113 의사라면 완벽하게 건강한 인간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진실로 알고 있는 자라면, 조금이라도 절망하지 않는 인간은 틀림없이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쇠렌 키르 케고르
위에서 인용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절망의 시절을 겪기 마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반복되는 수험실패는 자존감의 하락을 넘어, 자기학대와 자기비하로까지 이어졌다. 정신적 아픔은 신체적 아픔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몸과 마음의 아픔은 또 다시 절망으로, 절망은 몸과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최초의 절망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이보다 큰 절망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최초의 절망이 아니었다. 마침의 기약이 없는 최후의 절망이었다. 오늘의 절망이 최후의 절망이 아닐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찾은 탈출구는 ‘앎’이었다. 몸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몸에 대해 배웠다.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물리적 뇌와, 신경생리학적 뇌의 작용을 배웠다. 다행히도 권위있는 전문가들이 TED, 책, 논문등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대중의 언어로 값진 지혜를 나눠주었고, 거기서 얻은 배움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평온을 찾았을 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살지?’ 그 과정에서 종교적 세계관, 철학, 명상, 사색이 힘이 되었다. 나의 건강은 제법 나아졌고, 마음에도 평온함이 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의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절망’은 언제든 고개를 들 준비를 마치고 있었고, 이따금씩 의식의 수면위로 존재감을 뽐내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나서 인근의 공원 벤치에서 후련하게 울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을 피해 숨어버렸지만 내심 누군가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진심으로 마주보아 준 느낌이었다. 나를 마주보아 준 그를 진심으로 돌봐주고 싶은 느낌이었다.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삶은 결코 ‘앎’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허구의 이야기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비문학의 세계를 우선시하던 내가, 시와 노래와 이야기를 포함한 예술이 인간의 생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계기였다.
42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명작은 어째서 배드 엔딩이 많은 거야?!”라는 불평이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고전이란 시대가 변해도 계속 읽혀온 책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그만큼 절실히 필요했던 책이지요. 사람에게 책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바로 절망했을 때라면, 고전으로 살아남은 책 가운데 절망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절망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은, 바로 그 절망의 이야기 속에서 구원과 해답을 찾습니다.
책에서 소개된 카프카의 편지 사례처럼, 사람들은 밝은 이야기를 원하곤 한다. 드라마의 시청자 게시판에 몰려가 주인공을 살려내라며 청원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우리에게는 비극이 필요하다. 절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삶은 언제나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기 마련이며, 성취의 순간을 위해서도 고통과 미련과 포기가 함께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나 만의 ‘묠니르’를 소환하여 얼음장같은 마음의 벽을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은, 절망의 이야기속에서 키워나갈 수 있다.
16 시련을 처절하게 겪어본 사람은 안다. 어설픈 위로가 얼마나 폭력처럼 느껴지는지.
‘삶의 고뇌가 쌓인 만큼 타인의 고뇌가 읽힌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만의 시련과 나만의 절망을 겪어 낸 뒤로, (혹은 겪어오고 있는 과정에서), 누구나 시련과 절망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으며, 그것은 타인이 함부로 가늠할 수 있는 무게감을 가진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마주하고 위로할 때, 섬세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어설픈 위로의 폭력’이라는 표현은 책을 받아드는 순간부터 나의 마음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선의’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절망에서 나를 위로했던 것은 섣부른 해결책이 아닌, 진심어린 공감과 소통이었음을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133 카프카는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겪는 불행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는 거대한 것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국가나 정치 따위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다루는 화제는 부모나 일, 연애, 수면, 위장 등 일상적인 것뿐입니다.
저자가 권하는 다양한 이야기 중에는 ‘카프카’의 이야기가 있다. 거대한 담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역시 개개인의 소박한 삶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망도, 희망도, 성취도, 실패도, 우리의 소박한 삶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일상은 결코 소박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거대한 가치를 넘어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카프카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나가며>
담담한 어조로 담백한 문체로 진솔하게 고백하며 속삭인다. 저자의 진심과 마주하는 시간동안,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