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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할 때, 심리학 - 불안, 걱정, 두려움과 이별하는 심리전략
도리스 볼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날개 / 202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야 안돼~~~" <비상대책위원회>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개그콘서트의 코너였습니다. 유치원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테러범의 협박이 들어옴에 따라 경찰은 간부에게 아이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보고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경찰간부 김원효씨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돼~~~"를 외칩니다. 유치원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면 아이들을 즉각 대피시켜야 하는것이 당연할텐데 도대체 왜 안된다는걸까요? 그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아이들에게 대피하자고 말하면 말을 듣겠냐? 막 울겠지? 왜 우냐고 물어보면 친구랑 싸웠다고 하겠지? 왜 싸웠냐고 물어보면 쟤가 먼저 때렸다고 하겠지? 왜 때렸냐고 물어보면 쟤가 놀렸다고 하겠지? 왜 놀렸냐고 물어보면 쟤가 먼저 놀렸다고 하겠지? 왜 먼저 놀렸냐고 물어보면 쟤가 어제 먼저 놀렸다고 하겠지? 한참을 놀리고 앉아있다니까? 이러는데 언제 어떻게 어디로 대피시키냐? 안돼~~~" 라는 식이죠. 어처구니 없는 이유이지만 넋놓고 듣고 있자니 그럴싸하게 들리는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코미디같은 일들이 평소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면, 믿으실까요? 그것도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안'과 관련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경우의 대부분은, 이처럼 과장되고 비논리적인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독일의 대표적인 심리학자 도리스 볼프가 <불안할 때, 심리학>에서 밝히고 있는 사실입니다.
https://youtu.be/TVl5dNVwUv8?t=77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능력은 과소평가하니, 그러니 불안하지요.
p.55 정리하면, 불안은 대부분 특정 상황의 위험은 과대평가하고, 그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능력은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생긴다. 상황과 자기 능력에 대한 평가는 어린 시절에 이미 모두 배우기 때문에 불안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불안할 때, 심리학>은 "불안, 걱정, 두려움과 이별하는 심리전략"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전략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경험의 범위를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안을 현명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익힌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량을 힘껏 발휘하고 다양한 경험을 향해 용감하게 뛰어듦으로서 삶의 기쁨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누구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불안을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불안이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의 Part1은 '불안의 탄생'이라는 부제 아래 본질적으로 불안이 무엇이며 우리가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앞서 불안을 부정적인 느낌으로 표현했지만 불안은 본래 우리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감정입니다. 호랑이가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음에도 룰루랄라 무사태평이라면 살아남기 힘들겠죠. 문제는 '과장된 불안'입니다. 굳이 불안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확대해석하여 과장된 불안을 느끼는 경우이죠. 김원효씨가 상대방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 안돼~~~"라고 말하던 경우와 일맥상통합니다. 우리의 경우 상황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틈도 없이 "야 안돼~~~ 난 안돼, 난 못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한계짓는 경우가 되겠죠. 김원효씨의 개그를 보며 웃음지을 수 있듯, 우리가 반사적으로 경험하는 불안이 알고보면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면, 불안에 떨지 않는것을 넘어 언젠가는 그런 자신을 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불안의 타당성을 검증함으로써 비합리적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 요지입니다.
상황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은 결국 우리의 결정이다.
p.63 불안은 개인의 결정이다. 모두가 특정 상황에서 얼마만큼 불안을 느끼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p.105 세상만사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평가를 최대한 사실에 맞추어 점검하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불안을 검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책의 Part2부터 본격젹으로 '불안 해소를 위한 기본 8단계 전략'을 소개함과 함께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1단계-불안 목록을 작성해보자', '2단계-감정의 ABC에 맞추어 분석해보자'에서 시작하여 8단계까지 이어지는 전략은 각각의 단계를 거치며 불안을 또렷이 응시하고 그것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검증합니다. 나아가 그것을 극복한 새로운 나로 성장하도록 만들죠. 특히 2단계에서 제시하는 '감정의 ABC'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기술입니다. A는 '상황'입니다. B는 '평가'입니다. C는 '감정, 신체 반응, 행동'입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과정을 3단계로 도식화 한 것이죠. 예를들어 A-운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B-사고가 나서 자신이 다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C-불안하고, 손발이 떨려, 운전을 포기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불안을 또렷하게 도식화하며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 만으로도 저에게는 참 유익했습니다. 나아가 3단계에서 6가지 질문을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데요, Q1-당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인가? Q2-당신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상황이 실제로 불쾌할 수 있다면,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Q3-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을 막을 방법이 있는가? Q4-만일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Q5-다른 사람도 당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거나 그 상황을 기피하는가? Q6-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을 피한다면 무엇을 잃을 거 같은가? 등과 같은 질문입니다. 이를 통해 운전 중 사고의 현실적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것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일어날 경우 내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같은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두려워 운전을 회피했을 때 결국 내가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 생생하게 상상해보죠. 이처럼 8단계 전략은 불안의 현실성을 검토하고 대응방법을 수립하며 극복을 위한 용기와 의지를 북돋우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종의 워크북처럼, 모든 사례에 범용성있게 적용 가능한 전략을, 독자가 직접 일상에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참 실용적이었습니다.
사회불안에 빠져있던 사이, 내가 놓쳐버린 소중한 기회들.
p.54 몸과 마음은 하나기 때문이다. 신체질환이 공포를 불러올 수 있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따라 아플 수 있다.
p.77 회피하면 당장의 불안은 면할 수 있지만 삶의 반경이 현격히 줄어든다. 불안을 면한 대가가 너무 혹독하지 않은가. 또 삶을 적극적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불안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힘들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회피 전략은 그 상황이 실제로 위험할 때만 의미가 있다.
저의 경우 약간의 사회불안이 있습니다. 주목받거나 무대에 설 때 긴장감에 몸이 떨리는 바람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챙김 명상을 연습하며 상당히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독서를 통해 새로운 발견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사회불안 너머에 존재하는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입니다. 저자는 심리학자답게 불안 너머에 존재하는 심리적 원인에 대해서도 다루는데요, 저의 경우 "나는 완벽하게 잘 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와, "나는 남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다, 비난받거나 거부당하고 싶지 않다"는 '인정욕구'가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여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적어도 비난받거나 거부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혹사시켰던 것이죠. 하지만 8단계 전략을 적용하며, 특히 '감정의 ABC'에 따라 나의 불안을 분석해보니 그것이 얼마나 바보같은 태도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불안을 언어를 통해 낱낱이 들여다보고 나니, 희미하고 막연하게 느껴왔던 불안이 얼마나 과장되고 허황된 것이었는지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불안 때문에 회피하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기회들, 그로인해 놓치게 된 아쉬운 경험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사람과 진심으로 교류할 수 있었던 기회, 새로운 도전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 새로운 경험속에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기쁨처럼 말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심리기술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마저 근본적으로 바뀌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과 함께한 지난 1주일 동안 '감정의 ABC'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요, 저의 경우 ABC로 도식화한 뒤 Q1을 통해 현실성을 검증하고 Q4를 통해 나의 대응방법을 구상하며, Q6를 통해 내가 놓치게 될 소중하고 아쉬운 것들을 떠올려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보다 용감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보다 용감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고 자신하게 된 고마운 독서였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삶을 받아들이기
p.66 우리의 목표는 목표 실현을 방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방해하는 불안은 극복하고, 실제 위험을 경고하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불안에 대해서는 그 대처법을 배우는 것이다.
p.247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신뢰를 선사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 한 켠에 불안을 품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우리를 구해주죠. 코로나에 대한 불안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게 하고 우리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만들어주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과장된 불안에 움츠러듭니다. 우리의 역량을 펼치지 못하게 하고, 불안한 상황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소중한 성장과 기쁨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그러니 이제는 거울 속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봅시다. "야, 안돼~~~"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마음 속 불안을 똑바로 붙잡고 물어봅시다. "정말 안돼?" 감정의 ABC를 통해 분석하고 8단계전략을 통해 불안을 뛰어넘다보면 어느새 그 불안이 이렇게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고뤠??? 그치? 내가 좀 과장했지? 그럼 사람 불러야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으로다가" 언제든 불려나올 그 사람이 우리를 용감하고 생기있게 만들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