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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평점 :
경제학은 정말이지 막막한 학문이었습니다. 모형과 수식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현실의 모습과 동떨어져있는 것 같았죠.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려했던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동기와 흥미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불편한 숫자와 생소한 수식들의 향연은 거부감을 더했습니다. 경제학을 향한 반사적 거부감을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경제사'를 만나고 난 뒤였습니다. 세계경제의 역사를 다룬 <커맨딩 하이츠>라는 다큐맨터리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고, 대공황이라는 전세계적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경제'론자와 '시장경제'론자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바라보며 '경제학'이라는 것이 결코 현실과 괴리된 수식속의 이야기가 아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감정적 거부감의 장벽을 허물고 난 뒤로 경제학은 저에게 한껏 친숙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쉬워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가 늘 쉽기만한 것은 아닌것처럼 말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의 학문, 이보다 '철학'을 향한 선입견을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학부시절 큰 마음을 먹고 수강했던 철학수업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죠. '학문을 위한 학문', 내지는 '이론을 위한 이론'으로 느껴졌습니다. 재미는 없었고 공부하기도 어려웠죠. 그랬던 제가 철학을 향한 관점을 바꾸게 된 것은 그것을 '삶'과 연결시키는 경험을 하고난 뒤였습니다. 경제학의 그것과 비슷한 체험이죠. 삶의 흥미를 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것이 다 무의미하다는 염세주의, 허무주의에 빠졌었죠. 느닷없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겁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닿아있고 개인적인 논리가 그것을 지지했겠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니체'를 만났습니다. 이진우교수님이 강연한 <EBS 인문학 특강-니체, 신이 죽은 시대를 말하다>를 시청하게 된 것입니다. 니체는 '신'이라는 절대적 질서가 무너진 뒤 필연적으로 허무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을 위해 니체가 제안한 삶의 방향성과 인간향이 바로 니체 철학의 정수입니다. 종교를 믿어왔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목적과 가치와 믿음을 갖고 살아오던 어느 날 그것을 상실한 뒤로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었더는 점에서 마치 저를 향해 전하는 메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이진우교수님의 저서를 비롯 니체철학을 다룬 다양한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다시금 삶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큰 의지와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철학은, 삶과 동떨어진 책 속의 학문이기는 커녕, 철저히 삶과 맞물려 있는 실용적이며 본질적인 학문이었던 것이죠.
<틸리 서양철학사>가 가진 장점은 '맥락'과 '흐름'입니다. 철학자와 철학자를 연결하고, 철학자와 철학사상을 연결하는 '맥락'과 '흐름'입니다. 책은 짧은 제목이 의미하듯 서양철학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인 '프랭크 틸리'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철학 교수입니다. 이 책은 1914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개정을 거쳤는데,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미국 각 대학의 철학 및 역사학 분야에서 꾸준히 교과서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여타의 다른 철학사 책들에 비해 '객관성'과 '공정성'측면에서 대중과 학계의 인정을 받고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직접 책을 읽어보니 무슨 '객관성'과 '공정성'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저자의 해석보다는 '사실'과 '논리'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다소 자극적인 맛은 없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책들은 철학서라고 하더라도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장치들이 보이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죠. 하지만 그래서 재미가 없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닙니다. '논리'가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단편적 사실을 '연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유구한 철학의 역사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개연성'의 재미가 있습니다. 독립된 책 속의 이론인줄 알았던 철학이론이 철학자 개인의 기질과 당대의 사회, 문화적 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발견'의 재미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지적활동의 재미'가 풍부한 책입니다. 철학자, 철학이론, 후대 철학자로 이어지는 맥락과 흐름의 변주속에서 벌어지는 '지적 활동의 재미' 말입니다.
책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그리스철학에서부터 출발하여 중세철학, 근대철학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흄, 라이프니츠, 칸트, 니체, 벤담, 밀,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이 등장하고 최근의 인물로는 윌리엄 제임스, 듀이 등도 다룹니다. 즉 서양철학의 시작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꼼꼼하게 다룹니다. 824페이지의 분량이 말해주듯 다루는 내용은 상당히 방대합니다. 다만 범주 자체가 워낙 넓기에 철학자 개인에 할당된 분량이 한정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책을 통해 전반적인 철학의 흐름을 살펴보고, 흥미가 생기는 철학자를 쫓아서 깊게 파고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흥미로운 개별 철학자를 기준으로 앞뒤의 흐름을 따라가며 책을 읽는것도 흥미로운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후자의 방식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기준점은 역시 '프리드리히 니체'였죠.
629 니체는 인간이 서로에 대한 모든 존경을 상실하며 아울러 매우 무시무시한 역사적 결과들을 안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니체는 인간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인간의 느낌을 회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하는 일을 수립했다. ... 그는 과학주의적 정신에 경도된 우리의 시대가 신적 계시에 대한 생생한 신념을 상실할 때 완전한 "허무주의"의 위험에 빠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630 인간이 욕구하는 바는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상태의 고양, 더 큰 권력이다. ... 인간은 더 큰 권력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쾌락을 희생하고 고통을 짊어진다.
니체 개인의 역사는 이미 충분히 알아본 바 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니체의 삶과 떨어트려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의 삶은 그의 철학에 대한 진정성을 납득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철학을 철학사와 연결하여 생각할 생각은 다소 못해본 것 같습니다. 특히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연결해서 공부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지 철학사적 '흐름'과 '맥락'에 주목할 생각은 못했었죠. 새롭고 재밌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받아들이던 니체가 그것을 어느 지점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전환시켰는지를 짚어보고 나니, 그 '전환'이라는 사상적 번뜩임의 시점에서 니체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흥분되지 않았을까요? 니체가 강조했던 것처럼 '고양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비할 수 없는 '위버멘쉬'그 자체이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 '저' 역시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름의 역사와 서사를 갖고있는 개인으로서, 나에게 선한 영향을 전해주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고마움'을 가져야겠다고, 내가 누군가에게 전할 영향력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철학부터 최근의 실증주의적 경향까지,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을 총망라한 책입니다.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과서로 채택받을 만큼 '공정성'과 '객관성'에 있어서 인정받고 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지적사고'의 재미와 함께 '맥락'과 '흐름'에 주의를 기울이며 서양철학의 역사를 짚어보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던 이진우교수님의 니체강의는 아래 링크를 통해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