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고흐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 전통과 도덕적 가치를 허문 망치 든 철학자의 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공공인문학포럼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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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독일의 철학자로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극의 탄생』(1872),『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등의 저서를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네덜란드의 화가로 풍경화와 초상화를 자주 그린 후기인상주의 화가다. <정물 : 열두 송이의 해바라기가 있는 꽃병>(1888), <밤의 카페 테라스>(1888)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철학자와 화가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니체의 문장과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을 한 데 묶는데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절묘한 조합이라고 여길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되려한 삶의 예술가였고 그러한 정신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살아왔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린다. 기존의 통념과 상식을 과감히 때려부수며 새로운 사상체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조차 목사의 아들이었던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니체가 했던것은 선언이 아니었다. "신은 죽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고뇌의 서문이었다. 절대적 당위가 사라져버린 시대, 삶의 이정표가 무너져버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나약하고 불안한 인간으로서, 혼돈의 해독제로서의 지혜를 갈구하는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니체는 망치를 들기 시작한다.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던 통념적 신념을, 통념적 가치를, 통념적 의미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신념체계, 의미체계, 가치체계를 쌓아올리며 '허무'와 '염세'를 넘어 '힘'과 '의지'와 '희망'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삶을 사랑하라', 그리고 '너 자신이 되어라' 라고 외친다.

삶을 사랑하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고흐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 목회자, 책 판매원 등의 직업을 거친 고흐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27살이었다. 그에게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나 '생계수단'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시간은 내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릴 때다." 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을 구원하고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른일곱의 나이로 권총자살하기까지 그는 20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자신과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미적세계를 화폭에 담았던, 그야말로 고흐 자신으로서의 삶을 온몸으로 증명했던 10년이었다.

책 <니체와 고흐>는 그런 니체와 고흐의 글과 그림을 한 곳에 담았다. 개인적으로 제목만 들었을 때는 니체와 고흐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일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런 구성은 아니었다. 왼편에 니체의 짧은 글과 오른편에 고흐의 그림을 담은 단순한 구성이다. 그렇게 책은 오로지 니체의 글과 고흐의 그림으로만 이루어져있다. 그렇다면 어떤 글과 어떤 그림을 매치할 것인가가 관건일텐데 이 부분의 엮음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목차를 펼치면 10개의 챕터가 눈에 들어온다. '1.아름다움에 대하여', '2.삶에 대하여', '3.신은 죽었다', '4.지혜에 대하여', '5.인간에 대하여', '6.존재에 대하여', '7.세상에 대하여', '8.사색에 대하여', '9.예술가에 대하여', '10.니체를 만나다' 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관련된 니체의 짧은 글과 고흐의 그림들이 담겨있다. 니체의 글은 사실 친절한 편은 아니다. 직설적 표현보다는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번 읽어서 그 의미가 확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곱씹어 읽을수록 깊은 의미가 서서히 드러난다. 책에 담긴 니체의 글들은 주제에 따른 구성 덕분인지 비교적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이해하며 삶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고흐의 그림 역시 개인적으로 해바라기, 자화상, 밤의 테라스를 제외하고는 잘 몰랐는데 수많은 저작들을 한권에서 손쉽게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무엇을 포착하고 어떻게 느꼈는지에 공감하며, 역시 고흐는 누구보다도 일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응시한, 삶을 사랑한 예술가였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216 개인은 무언가 전혀 새로운 존재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이다. (...) 개개인은 전통적 용어도 역시 개인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과 지식을 개인이 창조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개인이다. 해석자로서의 개인은 한결같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에의 의지>

니체는 자신의 글을 '앞으로 두 세기 이후'의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두 세기 후가 다가오고 있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니체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 니체의 아포리즘을 담은 <니체의 말>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니체를 다룬 저작 또한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신'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뒤로 밀려난 요즘,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돈'이다. 그러나 돈은 결국 교환의 수단이다. 교환의 목적이 아닌 교환의 수단이 최고로 인정받는다는 아이러니. 우리가 '가치의 혼란'에 빠진 세상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요즘 시대에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는 고흐의 그림은 당대에는 별로 사랑받지 못했다. 그런 고흐의 그림을 요즘의 사람들이 주목하고 즐겨찾는 이유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가치의 혼란'에 빠진 시대. 사회적 당위와 바쁜 생계에 쫓겨 살아가면서도 소중한 일상을 주의깊게 응시하고, 순간과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불꽃처럼 살다 간 두 남자의 글과 그림을 만나보며, 나 역시 순간의 나를 둘러썬 존재들을 주의깊게 응시해야겠다고, 그 안에 담긴 소중한 의미에 감사하며 삶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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