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인간의 탄생 - 세기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발견한 에로틱의 미학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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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소설을 읽어야 할까? 소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 김영햐 작가가 출연한 <대화의 희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무한히 확장되는 공감의 지평을 통해서 끝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렇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건을 경험하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대화와 생각과 감정을 나열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이 독자에게 영감과 감동을 줄 이유는 또 무어란 말인가. 그것은, 그 가상의 이야기들이 자신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통로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자신과 세상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끌어안음으로써 삶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삶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인간의 이야기가 그래왔고 삶의 이야기가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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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욕망하는 인간의 탄생>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격동의 시기를 거친 독일의 역사적 흐름과 그에 따라 함께 변화한 문화·예술의 모습을 다룬 책이다. 그런데, 굳이 19~20세기가 중요할 이유가 있나? 어느 시대나 사회의 변화가 예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해당 시기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리드리히 니체. 단순히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보편적 가치기준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시기였다. 절대적이었던 기독교 윤리가 흔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기준에 혼란이 왔고, 인간 진화의 증거가 드러나며 본능과 욕망을 지닌 보편적 생물로서의 인간성이 두드러지며 "나는 누구인가"의 기준에 물음표가 붙었다. 시대를 지배하던 사회·문화적 양상은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 흔적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 드러났다. 그것은 단순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일종의 '모색'이었다. 당대의 예술과 문학에는,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삶의 방향성을 모색했던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치열한 투쟁과 성찰의 흔적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비스마르크의 독일통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사회적 변화를 짚어보는 한편, 문학과 예술에서 드러나는 일관된 정신사적 흐름을 밝혀낸다. 개인적으로 "문학이란, 예술이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고마운 독서였다.

400 유럽인들에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종교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붕괴되며 찾아온 가치의 아노미 상태에서 새로운 가치 기준을 찾아 방황하던 시기였다. 또한 오늘날 서구사회의 근간이 되는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이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 전통적 사치체계가 붕괴한 상황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새로운 가치의 중심을 찾고자 했던 당대 지식인들과 작가들의 모습은 개인적인, 또 사회적인 차원에서 가치의 부재와 혼란으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그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성찰은 경제적 가치가 모든 것의 척도가 되어버린 우리에게 고민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주제로 보나 분량으로 보나 만만한 책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단어 하나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과 문단과 챕터는 굉장히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전체적인 구성과 문장의 흐름을 구성하는 저자의 필력 덕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책의 전반부에는 역사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책의 후반부에는 문학의 인용이 자주 등장한다. 읽을거리가 풍부해서 지식을 넓히는, 새로운 발견의 영감을 얻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해서 책에 등장하는 <봄의 깨어남>이나 <꿈의 노벨레>와 같은 소설들을 미리 읽어보지는 못했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지장은 없었지만 미리 읽어두었더라면 훨씬 더 읽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예술과 삶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를 기대하는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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