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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 - 인문학적 통찰의 힘을 길러주는 일주일 간의 심리학 여행
린쟈오셴 지음, 이은정 옮김 / 베이직북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학부생활 내내 나에게 맞지 않는 전공수업을 이어가느라 애를 먹었다. 특히 숫자와 수치를 다루는 영역에서다. 사칙연산을 활용하는 활용하는 회계학에서부터 조금 더 복잡한 연산을 요구하는 통계학이나 투자론의 영역까지, 수를 활용하는 과목이라면 나에게는 큰 산이었기에, 일단 스트레스를 한웅큼 집어먹고 수업을 시작하고는 했다. '수'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어느정도 해소한 지금이라면 몰라도 그 때의 나에게는 분명히, 경영학을 선택한 것이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만약 스무살 무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전공을 선택할 것이다. 심리학. 심리학이 참 좋을 것 같다.
뒤늦게 심리학에 빠지게 된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졸업 후 수험 실패가 이어지며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집중장애와 불안도 함께 찾아왔다. 도무지 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좋아하던 책에도 흥미를 붙일 수 없었다. 나를 심리학에 관한 관심을 이끈것은 그 와중에 나타난 작은 호기심이다. "이게 도대체 뭐지?" 무언가가 분명히 나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지만 '그것'이라고 특정지으며 이름부를 수 없는 무엇. 심리학을 배운다면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그것을 다루게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 이유로 심리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조차 읽고 배움과 시도를 이어가던 어느 날, 다시금 주의깊게 책을 읽고 있던 나를,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다듬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 '무엇'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런 표현을 쓸 것이다. '불안'. 심리학이 나에게 준 많은 선물들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불안을 똑바로 볼 수 있게된 것'을 선택할 것 같다. 심리학을 더 빨리 알았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되어 참 다행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더 알아나갈 심리학이 기대되기도 한다. 심리학, 진작 배울걸 그랬다.
178 다행히도 한 명의 훌륭한 의사가 시시각각 당신을 주목하고 병이 악화되지 않았을 때 경각심을 줄 수 있다. 그 훌륭한 의사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자신만이 본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적절하게 치료할 수 있다. 근래에 베스트셀르가 된 '주치의를 구하느니 스스로를 구하라'라는 책의 제목만 봐도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느껴진다.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세상에 나보다 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건강 문제를 어디에다 미루지 말고, 진정으로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책임을 다하자.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전문지식이나 기술보다 훨씬 중요하다.
책 <심리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심리학의 전반을 소개하는 입문서다. 심리학의 의미에서부터 주요 인물과 이론, 심리학적 지혜를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방법 등 심리학에 호기심을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내용들을 다채롭게 담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이 '요일'형식의 구성이다. 이 책의 목차는 월요일~금요일, 주말의 6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저자의 안내에 따라 책을 읽어나간다면 일주일만에 심리학 전반을 훑어볼 수 있게 된다. 월요일은 입문이다. 심리학의 정의, 주제 및 탐구방법을 다룬다. 화요일은 '기원과 발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18세기 이후의 과학심리학을 지나 현대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기술에 따른 심리학의 변천을 살펴본다. 수요일은 '주요 인물과 이론'이다. 융, 에릭슨, 반두라, 매슬로우, 밀그램, 로프터스, 마틴 셀리그만, 스턴버그 등 유명 심리학자들의 핵심이론과 주요개념들을 짚어본다. 목요일은 '심리학의 갈래'다. 심리학과 삶의 연결고리를 따라가며 우울증, 불안, 정신분열증 등의 질병들을 알아본다. 임상심리학과 심리치료에 대해 알아보기도 한다.금요일은 '심리학으로 세계 바라보기'다. 인간관계, 사랑, IQ와 EQ, 용서, 행복, 자존감 등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제들을 '삶의 접점'에서 다뤄본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특히 좋았던 챕터다. 마지막으로 주말은 '심리학 실천하기'다. 심리학을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 태도를 제안한다. 배움이 이론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적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어린 조언이다. 심리학과 독자를 향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던 챕터였다.
132 핵심이 바로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셀리그만은 사람들이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을 귀인형태라고 불렀는데, 비관적인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모두 내 잘못이야. 불행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아. 모두 끝났어.' 이러한 귀인형태의 특징을 각각 '개인성', 영구성', '보편성'이라고 한다.
133 낙관적인 사람들은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귀인형태가 비관자의 경우와 정확히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해고를 당한 낙관론자는 일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즉, 자기에게 능력이 없어서 '잘린'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불경기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즉, 영원히 지속되는 일이 아님을 믿는다) 또는 이곳에 아니면 다른 곳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즉, 보편화하여 확대해석하지 않고 특정한 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낙관자의 귀인형태는 마음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나쁜 일이 자존감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쉽게 기분이 저조해지거나 장기적으로 우울해하지 않는다.
133 흥미로운 점은 일이 순조로울 때면 낙관론자는 비관론자가 실패를 해석하는 귀인형태처럼 '개인성, 영구성, 보편성'의 프레임으로 상황을 해석한다는 점이다. 즉, 성공경험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해나갈 것이며, 어떤 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개영보'를 발견한 것은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개인성, 영구성, 보편성이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의 내 모습이 그랬다. 모든 실패는 내 탓이며, 지금 나의 무능력과 무기력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몇 번의 실패는 나의 보편적 무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라 느껴졌고 몇 가지 결점은 나의 보편적 무가치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됐다. 벌어진 사건과 비관적 해석, 부정적 감정은 너무도 끈끈하게 결합되어서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진실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사건과 해석에, 즉 귀인형태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어 준 것이 바로 명상과 심리학이다. 명상을 통해 고착회된 해석으로부터 떨어져나와 객관적으로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알아차렸고, 심리학을 통해 비합리적 신념과 부정적 해석을 검토하고 해체하고 재구축했다. 언어의 힘이 무엇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개념화할 수 있다면 포착할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호하고 막연했던 나의 '귀인형태'에 '개영보'라는 유용한 인식의 틀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배움이고 발견이다.
한편 비관론자와 대립되는, 낙관론자가 '개영보'를 삶에 적용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부정적인 사건의 경우 '개인성'에서 외부요인에 주목하고, '영구성'에서 단기적 속성에 주목하며, '보편성'에서 파급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그런데 긍정적인 사건의 경우에는 또 이와 반대다. '개인상'에서 자신의 잘 한 점에 주목하고, '영구성'에서 장기적 지속을 기대하며, '보편성'에서 자신의 유능을 믿는다. 논리법칙으로 따지면 모순적인 태도다. 법 적용을 이렇게 한다면 탄핵감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는 논리나 사법과는 현저히 다른 영역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그 책임은 오롯이 스스로 지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경험이라는 삶의 순간을 검토하며 '무엇에 주의를 기울일지'를 선택하는 것은 적적으로 자신의 자유다. 소중한 자신을 마주하며 다정한 친구가 되지는 못할망정, 심판관이 될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해석하며, 타인을 바라보며, 타인의 삶을 해석하며, 보다 자비로운 필터를 사용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