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알면 보이는 것들 : 서울편
박혜진 지음 / 프로방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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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주말을 이용해 역사탐방 인솔교사 일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경복궁, 종묘, 각종 박물관들을 다니며 역사이론을 공부하고 역사현장을 탐방한다. 맑고 귀여운 아이들과의 나들이는 늘 보람되고 즐겁다. 하물며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함께 만나는 기쁨은 더할나위 없다. 그런데 일을 거듭하면서 보람이나 기쁨보다 더 큰 무게로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배움'이다. 먼저 아이들로부터 배운다. 동그란 눈으로 유물을 둘러볼때면, 엉뚱한 듯 날카로운 질문으로 관심을 드러낼때면, "순수한 호기심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는 한다. 두 번째로 역사현장으로부터 배운다. 사실 나조차도 어린시절 답사나 탐방을 즐기는 아이는 아니었다. 박물관에 가야할때면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렸고, 현장답사 역시 유쾌한 나들이는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배운 역사를 통해 내가 떠올렸던 것은 "그렇구나." 단지 그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한 책임감으로 공부한 배후의 '스토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인간들의 삶, 우리 조상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렇구나"의 이해를 넘어 "그랬구나!"의 감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는 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만큼 감탄하기 시작했다. 더 풍성한 감탄을 기대하며 더 넓은 앎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문화유산, 알면 보이는 것들-서울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에 위치한 주요 문화유산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고궁, 박물관, 기념관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총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1장-선사시대-암사동 선사유적지', '2장-고구려-아차산 보루', '3장-백제-풍납토성과 몽촌토성' '4장-신라-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5장-발해-국립중앙박물관', '6장-통일신라-국립중앙박물관', '7장-고려-낙성대와 전쟁기념관', '8장-조선-경복궁', '9장-일제강점기-서대문형무소', '10장-현대사-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사까지를 모두 담고 있으며, 챕터별로 한 곳의 탐방지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보통의 역사책이 '시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적어내리는 반면, 이 책의 경우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 본인이 공간을 실제로 둘러보며, 역사기록에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버무린 에세이 형식의 문체로 이루어져있다. 특히나 역사적 상상력을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이 더해져, 마치 나도 현장에서 두 눈과 두 발로 탐방을 함께하고 있는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풍성한 배경자료와 해설도 좋았다. 2장은 '미처 몰랐던 고구려 흔적'이라는 부제 아래 아차산을 함께 둘러본다. 고구려의 주요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한 뒤 아차산의 보루들을 함께 돌아보며 유물들을 관찰하고, 그 안에 담긴 고구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처럼 '맥락'과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만나보니 전체적인 흐름이 잡히고 개념들이 연결되며 한결 재미있게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인솔하는 선생님이나 나들이를 계획중인 부모님께도,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역사에 대한 관심을 막 키워나가기 시작하는 어른이라면, 이 책 한 권을 친구삼아 주말마다 10회의 서울역사탐방을 떠나보는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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