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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 너무 많은 생각이 당신을 망가뜨린다
닐스 비르바우머.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오공훈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분명히 이러려던게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때리고 말았다. 또, 멍을 때렸다. 나는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을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마지막으로 책을 훑어보던 중 3년 전의 어느 날로 불쑥 끌려들어갔다. 저자의 전작 <뇌는 탄력적이다>를 처음 읽었던 수원의 한 도서관이다. 거기서 만났던 친구들, 대화들, 사건들에 빠져있던 나는 문득 고개를 빠르게 두차례 흔들고는 지금 여기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이 많다. 책을 읽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특정한 키워드를 타고 생각의 가지를 뻗으며 연상에 연상에 꼬리를 무는 백일몽에 빠지고는 한다. 때로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치지 않는다. 과거의 실패에 대한 후회와 자책, 미래의 문제에 대한 불안과 걱정에 휩쓸려 눈앞의 현실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성향에는 나름의 장점도 있긴 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불쑥 떠올린다든가, 한 번의 실패를 여러차례 곱씹음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더 많았다. 우선 피곤하다. 머리가 언제나 공회전상태에 있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경향이 있다.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잠깐이면 마칠 일을 생각의 바다에 빠져 떠돌아다니느라 불필요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했다. 삶의 기쁨에 대한 문제도 있다. 과업의 성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만족감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걱정과 후회에 빠져 있느라 기뻐하지 못했다. 나의 '생각 많음'은 이래저래 삶의 '무거운 모래주머니'처럼 나를 힘들고 지치게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명상'이다. 생각을 비울 수 있다니, 그럼으로써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니, 나에게 꼭 필요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하던대로 이론부터 익혔다.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이론과 효과에 대해서 지식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내 직접 명상을 시작하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생각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생각이 많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생각이 많았다. 집중의 열차는 호흡이라는 선로로부터 생각이라는 오경로로 쉴새없이 이탈을 거듭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 생각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텅 빈 상태'를 다룬 다채로운 이야기
지난 1년간 본격적으로 명상을 배우고 실천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생각은 명료해지고 목표는 분명해졌으며 무의미한 패턴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길이 멀지만 명상과 함께 더 중심잡힌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과 의지만큼은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말이지 반가운 책을 만났다.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이다. <뇌는 탄력적이다>에서 뇌가소성의 방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닐스 비르바우머의 공저다. 저자는 표지에서 "너무 많은 생각이 당신을 망가뜨린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생각을 비운 '텅 빈 상태'가 열어주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텅 빈 상태'의 뇌과학적 특징을 설명하고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 황홀경'과 비유하기도 하며, 명상과 종교적 체험에서의 상태와도 비교하며, 음악과 섹스를 연결하기도 한다. '텅 빈 상태'를 향한 전방위적 탐구는, 하나의 테마를 바탕으로 한 여행과 같이 흥미롭고 유익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텅 빈 상태'
125 백일몽으로부터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백일몽으로 인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목표 달성에 바해가 되기 때문이다. ... 백일몽은 힘겨운 일상에서 원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휴식이 아니라 불안과 혼란이 발생하는 진앙지 노릇을 할 때도 있다. 혹은 선불교에서 자주 말하듯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튀는 정신' 즉 생각이 지그재그 방향으로 허우적거리도록 조장해 일상사를 효과적으로 마치는 데 커다란 방해가 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텅 빈 상태'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비교한 부분이었다. DMN은 겉보기에는 텅 빈 듯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상태다. 백일몽이다. 앞서 내가 경험했던,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서 부유하던 상태다. 이 경우 얼핏 휴식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제대로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 몸이 쉴 뿐이지 머리는 계속해서 생각이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업무와 관계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걱정과 불안으로 이어지며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명상'을 하겠다고 자세를 잡았으면서도 실은 DMN에 빠져있었던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작업을 몸으로 실천하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눈을 감고 걱정과 불안에 빠져있던 시간들은 오히려 명상을 불신하거나 회피하게 만들기도 했다. DMN과 '텅 빈 상태'의 구분은 앞으로 명상에 임하는데 있어서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다. 기왕 쉴거라면 제대로 쉬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음악'과 '텅 빈 상태'
218 직업 음악가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명상을 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 저주파 세타파와 알파파가 전면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부드럽게 물결치는 바다에서 뇌 전기의 과잉 활동이라는 작은 섬이 튀어나왔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암악가가 고도로 집중하며 연주하기 때문이다.
악기를 연주할 때 명상을 하는 것과 유사한 뇌활동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저자는 9장에서 '리듬 혹은 그루브의 미학'이라는 제목 아래 음악과 리듬이 우리를 '텅 빈 상태'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명상을 할 때 기분이 좋다. 그리고 피아노를 칠 때 역시 기분이 좋다. 하지만 두 가지의 느낌을 연결해서 떠올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카타르시스 내지는 감정적 자기인식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피아노에 한참 흥미를 느낄때는 '나 자신'을 잊고는 한다. 좋아하는 일부 음악을 듣고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명상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 처럼 말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했던 '레빈의 풀베기'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한 '몰입의 행복'도 생각났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어떤 리듬'으로 연주할 것인지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나의 '텅 빈 상태'를 위하여
113 어떤 이는 텅 빈 상태를 느낀 뒤에 "연료가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고 밝힌다. 또 어떤 이는 텅 빈 상태로부터 창의적인 충동과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고 말한다. 아울러 명상을 하면 이와 비슷한 방향의 이득을 얻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한 해 명상으로 부터 선물받은 두 가지가 바로 '지혜'와 '에너지'다. 깊은 후회와 자책과 불안과 걱정에 빠져있다가도, 깊은 명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난 뒤에는 그것을 딛고 나아가야겠다는 용기를 얻고는 했다. 상대와 나 자신과 상황을 이해하며 수용하는 관점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해야겠다는 에너지도 샘솟고는 했다. 올해도 그 이상의 지혜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경계하기로 한다. '텅 빈 상태'를 기대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명상의 역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하기로 한다.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