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들을 위한 진리 탐구 - 우주물리학과 불교가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
오구리 히로시.사사키 시즈카 지음, 곽범신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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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의 목록을 정리하다보면 '요즘의 나', 혹은 '본질적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을 느낀다. 이러한 작업은 나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함으로써, 삶을 기쁨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힌다. 작업 그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요즘의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작업 중 하나다. 그런데 나의 '기쁨 목록'에서 언제나 최상단에 위치하는 기쁨이 있다. 바로 '아하!'의 기쁨이다. 호기심을 갖고, 그 호기심을 해결하고, 거기서 새로운 호기심을 뻗어나가는 지적유희의 놀이가 주는 기쁨이다. '앎'과 '기쁨'은 나에게 있어 결코 떨어트려 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런 나에게 하나의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찬스가 생긴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것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물리학자와 불교학자가 함께하는 존재론적 탐구
9 세상의 올바른 모습을 비춰준다는 의미에서 보자면 현대물리학의 흐름과 석가의 사상은 같은 뿌리로 이어져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학과 종교의 만남'이라 하면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분도 많겠지요. 그렇지만 예를 들어 영혼의 존재나 사후세계와 같은 문제는 그다지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들의 고통을 없애줄 길은 그러한 문제와는 무관할 테니까요.
 '편견이나 선입관이라는 가림막을 제거하고 세계를 가능한 한 올바르게 바라봄으로써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물리학과 불교의 공통점이 아닐까 합니다.

되짚어보면 '존재론'적 탐구는 인류 문명의 발달과정에서 늘 함께해왔다. 특히 '종교', 그리고 '과학'의 영역에서 말이다. 이 책 <지구인들을 위한 진리탐구>에서는 바로 이 과학과 종교가 만난다. 일본의 물리학자인 오구리 히로시와 불교학자인 사사키 시즈카가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진리를 풀어나간다. '1부-우주의 비밀은 어디까지 밝혀졌는가'는 물리학의 진리를 다룬다. 양자역학에서 우주론까지, 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진리의 세계를 풀어나간다. '2부-삶은 어째서 고통인가'는 불교의 진리를 다룬다. 사성제와 삼법인이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리에서 출발하여 윤회와 대승불교까지 범위를 넓혀간다. '3부-참된 삶이란 무엇인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앞서의 1, 2부에서 다뤘던 물리학과 불교의 이야기를 현실의 삶으로 끌어온다.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학문적 깊이를 바탕으로 두 석학이 풀어내는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의미의 갈증'에 빠져있는 나에게 유익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리학+불교, 앎+재미
80 석가는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아닙니다. 석가 자신이 우주의 진리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주의 법칙성을 발견하고, 그 법칙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끔 언어로 표현했지요. 석가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겠습니다만,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석가는 과학자와 무척 흡사한 관점으로 살아간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익했다. 평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불교에 대해서 한층 깊이 알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불교 교리 중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간 점이 좋았다. '종교'를 넘어 '삶의 지혜'로서의 불교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맞춤형 불교풀이'였다. 물리학의 배움도 좋았다. 물질의 근원에서 우주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뉴턴역학과 양자역학, 상대성이론을 만나볼 수 있었다. 블랙홀과 상대성이론을 다룬 챕터에서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려보며 "그래서 그랬구나"라며 예기치 않은 이해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독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앎'은 아니었다. '재미'였다. 불교와 물리학에 관한 생경한 내용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대화체의 구성을 띄고 있다. 물리학자가 이야기를 풀어갈 때는 불교학자가 끼어들어 질문을 건넨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충분히 궁금해봄직한 질문이었다. 특히 과학의 인과율과 대응대는 불교의 연기법을 다룬 챕터에서, 인간의 마음 역시 조건에 따라 결정되냐는, 즉 불교에서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보냐는 물리학자의 질문에서는 속이 다 시원해지기도 했다. 배움의 내용이 재미있었고 배움의 과정이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독서였다.

요동이 잉태한 별, 혼돈이 잉태할 별
50 이 요동은 우리들의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만약 초기 우주에 양자의 요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CMV도 완벽하게 균일했다면, 별이나 은하는 태어나지 않았겠지요. 공간에 에너지가 높고 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높은 부분에는 더 많은 물질이 모여들어 별이나 은하와 같은 구조물이 생겨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의 요동이 별과 은하의 씨앗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별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당연히 우리들도 태어나지 못했겠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V)'의 발견과 의미를 다룬 부분이었다. 초기 우주의 미세한 양자 요동이 없었다면 별도, 지구도, 우리도,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신비로우면서도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의 혼돈을 지녀야 한다"는 니체의 격언이 떠오르기도 했다. 양자 요동은 별을 잉태했고, 내 안의 혼돈은 새로운 별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내면의 요동이 없었다면 삶은 평화로웠겠지만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킬수도 없었을 것이다. 변화와 성장의 동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주의 요동도 내면의 혼돈도, 춤추는 별을 잉태하게 해준 감사하며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성장의 보람을 향하여
30 수행에 따라 자신을 바꿔가는 과정 자체가 자신에게는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른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을 갈고닦는 일이 살아가는 목적이지요.

무기력과 불안의 중턱에서 불교를 만났다.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생멸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은 당면한 고통을 마주볼 수 있는 위안과 힘이 되었다. 이제 과거를 넘어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 '진리'라는 등불을 찾기 위해 앎을 쌓아오던 요즘이지만, 결국은 그 '등불' 역시 마음에 달렸음을 다시금 되짚어 본다. 나에게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소중한 지혜다. 바른 견해와 생각으로, 바른 말과 행동과 생활로, 바른 노력과 알차라림과 집중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찾기로 했다. 당분간은 그렇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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