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철학, 법학의 눈으로 본 인간과 인공지능
조승호.신인섭.유주선 지음 / CIR(씨아이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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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영국 런던 및 뉴캐슬 지역에서는 심각한 콜레라가 창궐했고 이로인해 약 만여명이 목숨을 잃게 된다. 원인은 상하수도의 위생상태였다. 당시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농촌 지역의 인구가 도시를 향해 대규모로 유입되던 시기였지만 상하수도의 설비규모는 급속히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당시 런던의 런던의 상수도 시설은 특별한 정화처리 없이 우물에 고인 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하는 수준이었고, 오염된 물이 콜레라를 대규모로 퍼뜨렸던 것이다. 문제는 보건당국이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콜레라가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고 믿고 있었다. 콜레라는 몇 년 주기로 나타나며 많은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빅데이터'다. 존 스노 박사는 콜레라의 공기전염에 의심을 품고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날짜별 발병자 수, 사망자 수, 사망자 발생 장소, 지하수용 펌프의 위치 등을 토대로 콜레라 환자 발생 지도를 작성했고, '펌프 A'를 당시 콜레라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후 펌프 A는 폐쇄되었고 콜레라 확산은 진정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역사적 사례'로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다.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공학,철학,법학의 눈으로 본 인간과 인공지능>은 다양한 시선으로 인공지능을 들여다본다. 언제나 흥미로운 '통섭'의 시도다. 인공지능 그 자체로도 재미있는 소재인데, 독자적이며 전문적인 세 개의 눈으로 인공지능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1부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제목아래 '공학'의 눈으로 인공지능을 들여다본다. 인공지능의 역사와 원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접근 방식이다. 2부는 '인공지능과 철학자의 판타지'라는 제목아래 '철학'의 눈으로 인공지능을 바라본다. 철학자 콩트가 제시한 '인류 의식발달의 3단계'에서 출발하며 '라이프니츠'와 '메를로퐁티'의 견해를 결합하여 문제를 풀어간다. 여기서 문제란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과 로봇의 존재론적 문제의식이다. 3부는 '인공지능의 발전과 법률적 탐구'라는 제목 아래 '법학'의 눈으로 인공지능을 관찰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나타날 '책임'과 '권리' 등 법률적 쟁점을 다룬다.

인공지능. '인간'과 인공지능
인공지능. 흥미로운 소재다. 거기에 통섭까지 시도한다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호기심이 동했다. 인공지능의 원리는 무엇인지, 그들을 어떤 주체로 바라볼 것인지, 그들이 일상화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법적 갈등의 상황들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러한 면에서 충분히 흥미롭고 유익한 독서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며 내가 "제목을 잘못 읽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꼼꼼하지 못한 나는 <공학, 철학, 법학의 눈으로 본 '인공지능'>이라고 제목을 읽었다. '인간과'를 놓친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배웠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더 많은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다. 공학적 관점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학습구조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철학적 관점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인간과 인공지능이 다르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별함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의문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법학적 관점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권리와 책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강화학습, 우리의 걸음마
33 기계학습이란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동작하라고, 가능한 모든 경우를 프로그래머가 정의해주지 않더라도, 데이터를 통해서 사람이 학습하는 것처럼 최적의 판단이나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35페이지에는 기계학습의 세 가지 유형으로 '지도학습', '비지도학습', '강화학습'이 제시된다. 지도학습은 출력값이 지정된 입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학습방법이다. 회귀분석, 의사결정 나무 등이 포함된다. 지도학습은 출력값이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력 데이터가 주어졌을 경우 진행되는 학습방법이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규칙이나 유사성을 파악하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강화학습은 지정된 목표값을 향하여 '행동'과 '보상'을 토대로 나아가는 학습방법이다. 이 챕터를 배우며 무심코 행해왔던 나의 학습패턴을 구분하고 상황에 따른 개별적, 구체적 적용을 기대해볼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마지막의 '강화학습'이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에 적용된 학습방법이다. 아이가 걷는 방식을 빗댄 비유 덕분에 쏙쏙 이해되었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최상의 걷기법' 교재를 바탕으로 디딤발의 상황에 따른 다리의 각도를 미세조정하지 않는다. 그저 걸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좋은것은 취하고 나쁜것은 버린다. 수만가지 경우의 수에서 취해야 하는 '필승법'을 하나하나 지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대국 경험 속에서 좋은 것을 취하며 자가발전하도록 설계한 것이 알파고의 성장비법이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삶도 원래 그렇다. 걷기법 학원을 배운이도, 옹알이법 강좌를 다닌 이도 없다. 그저 경험하며 배워나갔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사회는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성장의 필연적 과정으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무능의 증거로 심판하는가. 나는 나의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무능감과 수치심에 빠져 허우적거렸는가, '배웠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성장으로 나아갔는가. '완벽한 한 걸음'을 위해 조바심 내기보다는, 반가운 실패를 향해 과감히 성큼 내딛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나의 불완전성
178 기계의 속성인 완전성이라는 관성에 젖은 로봇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이다. 나아가 기계의 또 다른 속성인 필연성에 익숙한 로봇은 자유의 차원에 무지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풍길 수 있는 개성이란 주름, 덧니, 흉터 같은 불완전한 흔적에서 나오고 이것들이야말로 모든 인간을 각자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불완전성. 176페이지에 적힌 소제목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통해 인공지능과 로봇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챕터의 일부다. '바이센터니얼 맨'은 어느 '인간다운'기계의 일대기를 다룬 공상과학영화다. 평범한 로봇이었던 앤드류는 우연한 사건으로 신경계의 변화를 경험하고, 보통의 로봇에게는 없던 고급지능과 호기심을 갖게 된다. 주인 가족과의 갈등과 사랑을 경험하던 앤드류는 인간과 같으면서 다른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인간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로봇'이 되어가던 앤드류는 어느 날 인간적인,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요소인 '불완전성'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완벽한 로봇이던 앤드류는 사랑하는 이에게 인간적인 조언을 듣게 된다. 실수하고, 모험을 시도하고, 사고를 치라는. 그 과정과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스토리, 그리고 저자의 해설은 '인간'으로서의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이다. 잘 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멋지게 해내고 싶다. 그 좁은 시야에 매몰돼 앞만 보고 달리며 자학과 자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던 앤드류에 비해 나는, 로봇이 되고 싶었던 걸까? 나의 삶은 유한하며, 나의 선택은 미숙하고, 나의 능력은 서툴다. 그렇게도 나는 인간적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 스스로를 좀 더 친절하게 대해도 되지 않을까? 나를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나의 불완전성을 팔벌려 맞이하며 말이다.

새로운 거울을 기대하며
인공지능에 대해 배우려다가 인간에 대해 배웠다. 인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역시 스스로를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이 필요하다. 신화와 연극이, 시와 노래와 희곡과 소설이 했던 역할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에 비춰진 인간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까? 무엇이 됐든 거기에서부터 시작되겠지. 정답 없는 우리의 걸음마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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