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읽는 시간 -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
문요한 지음 / 더퀘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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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줄 알았다. 그 날의 발표는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과제로 해야할 일들이 쌓여있었고 중간고사 준비로 분주했다. 팀발표가 아닌 개인발표였기에 완성도에 대한 부담감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미뤘다. 대강의 초안만 미리 짜두고 발표 전 날 밤을 새서 준비하기로 계획했다. 자료조사와 PT 작성을 서둘렀고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제 세부내용을 다듬고 발표 흐름을 익히기만 하면 끝난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술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굳이 꼭 갔어야만 하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전 몇차례의 거절이, 그 날 친구의 상황이 나를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갑작스런 술자리가 끝나고,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발표흐름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과 부족한 잠은 정신을 뒤흔들었다.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발표가 시작되었다. 호흡은 가빠오고 동공은 커지고 손은 떨리며 땀은 뻘뻘 흘렀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용에 집중하려 마음을 다잡을 무렵, 청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타과 수업이었기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평가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마음은 더 긴장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10월의 힘빠진 모기처럼, 바들바들 떨며 겨우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날의 충격은 생각보다 커서, 한동안 발표를 앞둘 때마다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금은 괜찮다. 그 날의 실패는 뼈저린 교훈을 주었고,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성공의 경험이 쌓였고 더는 무대가 두렵지 않다.

나의 원형, 나의 바운더리
244 최초의 관계는 하나의 '원형'이 되어 끊임없이 비슷한 관계를 찍어낸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틀을 애착이론가들은 '내적작동모델'이라고 한다. 같은 벽돌을 찍어내는 벽돌의 틀이 있는 것처럼 관계 역시 비슷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관계의 틀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틀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사한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왜 그 술자리를 거절하지 못했을까? 돌이켜 보면 그랬다. 나는 지나칠정도로 거절을 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거절을 함으로써 내가 겪을 몸의 불편보다는 상대가 느낄 마음의 불편을 더 걱정했다. 다른 한편, 나는 왜 청중의 평가적 시선에 그렇게도 불안해했을까? 누구나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나는 정도가 심했다. 10명의 호의적 시선에 기뻐하지 못하고 1명의 부정적 시선에 흔들렸다. 그 한 명이 부정적이라는 것도 순전히 나의 추측에 불과한데 말이다. 사건을 경험한 뒤에도, 10개의 긍정적 에피소드를 자랑스러워하기보다 1개의 속상한 에피소드를 아쉬워했다. 대화를 나누더라도 10개의 적절한 말을 기억하기보다 1개의 말실수를 자책했다. 왜 그랬을까? 왜 거절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았을까?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럴수도 있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거다. 상대의 마음을 걱정하는 거다. 그러니 나의 마음보다 상대의 마음을 앞세우며 감정을 소모했을 거다. 그런데 과연, 나는 상대의 마음을 더 걱정했을까? 내가 걱정했던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비친 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우리의 '관계'에 미칠 영향이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EBS 스페이스 공감 - 989회, 김창기 - 내 머릿속의 게임(시인 김경주 추천곡)

자아의 경계, 바운더리
63 바운더리는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아와 대상과의 경계이자 통로'를 말한다.

<관계를 읽는 시간>은 정신과 전문의가 바라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을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과학적 근거와 창의적 해석으로 풀어냈다. 핵심 키워드는 '바운더리boundary'다.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다. 바운더리의 핵심 기능은 '보호'와 '교류'다. 자신을 돌보면서도 상대의 친밀해줄 수 있는 든든한 힘은, 건강한 바운더리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이 '바운더리'를 바탕으로 자신을 돌보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다. 1부에서는 바운더리의 개념과 발생과정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바운더리의 문제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3부와 4부에서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위한 다섯가지 구성요소와 구체적 개선방법을 제안한다. 가족, 친구, 애인, 조직생활에서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바라는 분들께 의미있는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었다. '나 자신과의 관계'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무기력한 순응속에 놓쳤던 자아
133 거절이나 자기 주장을 잘 못하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기호, 취향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아의 분화'를 기준으로 순응, 돌봄, 방어, 지배형의 4가지 '역기능적 관계'를 제시한다. 이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것은 아니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는 상대를 바꿔가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관계를 돌이켜보며 모두 다 일정부분 경험해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특히 와닿았던 것은 '순응형'이다. 나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 상대의 힘들어하거나 실망해하는 표정을 마주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다. 누군가와 불편해지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다. 이는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일상의 여러 부분에서 영향을 미쳐왔다. 가장 큰 단점은 몸이 힘들다는 것이다. 지나친 업무량을 떠맡거나,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과도한 완성도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고갈되기 일쑤였다. 여러명의 의견을 절충하고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머리에 과부하가 오기도 했다. 이 모든 일상의 불편함보다 큰 문제는 '자아'의 경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 기호, 취향을 쫓기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우선시하다보니,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우리'에서 '너'는 있되, '나'는 없었다. 이를 희미하게 깨달은 얼마 전부터 스스로와 대화하는 기회를 늘려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하는지, 원하는지를 발견하고 행동하는 경험에 뛰어들고 있다. 자연스레 '자아의 경계'가 또렷해지는 것을 느끼며 삶의 기쁨 또한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이번 독서는, 나의 과거를 수용하고 현재와 통합하며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게된 의미있는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상처가 선물해줄 우리의 단단함
91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는 '적절한 애착손상'이 필요하다. ... '적절한 애착욕구의 좌절'은 세상을 헤쳐나갈 독립심을 주고, 자아 중심성에서 벗어나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기초가 되고, 대상의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바라보고 통합할 수 있는 시야를 준다. 좌절은 발달의 중요한 요소다.

저자의 '바운더리'이론은 '애착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애착이 건강한 바운더리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애착.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고 읽어봤을 것이다. 3세 이전 양육자와의 애착관계가 개인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긴 삶에서 개인의 성격과 대인관계를 좌우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저자는 애착이론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3세 이전에 결정된 우리의 인격은 영원불변한 것일까? 손상된 애착은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누구도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적절한 애착손상'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안정적 애착이란 끝없는 '단절-회복'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동아줄이지, 부모의 초인적 인내와 정성으로 한 번도 금가지 않고 빚어낸 도자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깨지고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담금질되는 굳건한 중심이라는 이야기다. 애착이 회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어렵지만 가능하다'정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처럼 단호하고 분명한 은유로 희망을 이야기하는것은 처음 만나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무균실에서 자라난 아이의 면역이 세균에 쉽게 무너지듯,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없이 자란 이가 회복탄력성을 갖추기 어렵듯 말이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신화와 전설 속 영웅들의 서사가, 반드시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담고있듯 말이다. 이 책에 담긴 순응, 돌봄, 방어, 지배의 역기능적 요소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축하한다. 우리는 남들보다 많은 '성장의 자원'을 갖고 있는 셈이다. 무질서하게 흩어졌던 상처의 조각들이 '의미'라는 이름아래 통합될 때, '회복'과 '성장'의 모험은 시작될 것이다. 

용감한 '세계의 상실'을 위하여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41


익숙치 않을 것이다. 익숙한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관계에 뛰어든다는 것이 두려울수도 있다. 미분화된 자신을 독립시키고 스스로 우뚝 서는 일, 과분회된 자신의 단절을 인정하고, '우리'로 연결되는 일 모두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큰 가치를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 되는데 늦은 때는 없다. 내면의 욕구, 재능, 가치에 귀를 기울이며 건강한 '자기 세계'를 조각해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건강한 '너의 세계'와 마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용감하게 세계를 상실하기를, 반갑게 세계를 획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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