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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 타인이라는 감옥에서 나를 지키는 힘
김보광 지음 / 웨일북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당연하지. 당연한걸 왜 물어. 당연한데 이유가 어딨어. 당연한게 당연한거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때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상대의 당연함으로 나의 당연함을 부정하며, 그의 생각을 강요하려 들 때는 화가 치밀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당연함으로 상대의 당연함을 설득하려 하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답답함과 속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단순한 '의견'의 차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관계'의 문제다. 갈등을 적극적으로 다루려는 사람이 있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사람이 있다. 자극에 대해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고, 느리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애정을 갈구하며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고, 애정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 대해 저항감과 불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기본적 반응의 차이는 관계의 다양한 순간속에서 갖가지 갈등으로 이어진다. 부부간에, 친구사이에, 사회와 조직에서 나타나는 관계문제의 배후에 이것이 숨어있다. 바로 '기질'과 '애착유형'의 차이다.
기질과 애착유형, 차이의 시작
이 책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는 관계의 갈등을 다룬 책이다. 젊은시절 학생운동을 함께 하며 만난 남편과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긴 오해와 갈등을 경험한 저자는, 남편과 함께 상처치유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3년여의 심리상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는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서 저자가 배우고 깨달은 내용이 담겨 있다. 관계회복의 시작은 갈등의 원인을 이해하는데서부터 출발한다. 근본적 다름을 구분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기질'과 '애착유형'의 차이다. 저자는 '기질'의 차이를 '확대형'과 '축소형', '애착유형'의 차이를 '저항형'과 '회피형'으로 나누어 구분한다. 기질과 애착유형이 결합됨으로써 4가지 유형이 조합될 수 있다. 확대-저항, 축소-회피처럼 말이다. 저자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는 남편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책을 보고 있는 저자에게 남편은 호감을 담아 "책 재미있어?"라고 묻지만 저자는 '책을 재미있게 봐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편감을 느꼈다. 저자는 책을 보고있는 자신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인 반면, 남편에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성향의 차이다. 자신을 수용하고 상대방을 이해함으로써 '건강한 관계'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제한이 아닌 이해의 시작
17 남자라고 해서 남성 호르몬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확대형은 확대적으로 발현될 유전적 요인을 더 많이 갖고 있을 뿐 축소적인 유전적 요인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기질, 애착 성향은 같은 유형이라도 양육 환경에 따라 조금은 다른 양상으로 형성될 수 있으며, 더욱이 상대적이라는 관계의 특성상 드러내는 모습에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사람의 성향을 4사분면으로 구분한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지나친 단순화와 일반화가 아닌가?"하는 의문이다. 사실 나는 이러한 구분 방식에 일정부분 불편함을 느낀다. 바로 사람을 '한계 짓는 경우'에 한해서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나랑 안맞아." 라며 상대를 함부로 규정짓고 판단하거나, "나는 원래 이래. 거봐, 또 이렇잖아. 평생 이럴거야." 처럼 자신을 제한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게될 우려 때문이다. 이는 관계를 쉽게 단절하게 만들고 관계의 지속과 자신의 성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구분을 일반화하지 않는다. 특정한 성향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영속적이지 않으며 충분한 노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정 성향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 애착을 안정 애착으로 다듬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를 세우는 '반영'의 대화법
책의 2장은 '대화로 풀 수 없는 오해는 없다'는 주제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법을 다룬다. 상대의 마음을 반영하지 않고 방어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뜨끔했던 항목이었다. / 첫째, 질문하기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 잘하는 형만 쳐다보셨어..."라며 소외받았던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데 "아주버님이 그렇게 공부를 잘했어요?"라며 반문하는 식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보를 교환하려 드는 것이다. / 둘째, 일반화하기다. "우리 엄마는 오빠만 챙겼어"라는 투덜거림에 "그 세대 어머니들은 남아선호사상에 물든 세대라서 보통 그랬잖아"라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도 종종 그랬던 것 같다. 나쁜 뜻은 아니었다. "너만 그런거 아니야"라고 일반화 함으로써 상대방이 불편한 마음을 벗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 어디있을까. 특별한 일이 어디있을까. 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은 특별하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 역시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나는 좁은 시야에 갇혀 황급히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싶어했다. 책의 내용과 나의 기질에 비추어보건대, 상대의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워 '회피' 성향이 발동했던 것 같기도 하다. / 셋째, 조언하기다. 시험에 떨어졌다며 속상해하는 친구에게 다른 학원을 추천하는 식이다. 감정의 버거움을 경험하고 있는 상대에게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실패가 마치 상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인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것도 참 많이 했다. 고민을 들으면 해결사 이승엽이라도 된 양 해결책을 고안하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했다. 의견에 대해 상대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짓기라도 하면 "나는 상대방을 위해 애써 고민했는데.."라며 속으로 서운해하기도 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좁은 시야와 습관적 패턴에 갇혀 대화하던 나를 돌아보며, '무엇이 중한지', 그래서 '어떻게 대화해야할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다.
나의 그랬던 기질과 애착
224 축소 회피형들이 사람 만나기를 재미없어하는 건 '난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말을 그때그때 솔직하게 못하기 때문이다. 가고 싶을 때 가겠다 말하고 보내고 싶을 때 그만 가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살이가 낯설고 관계가 어색한 축소 회피형은 그 서먹함을 극복하고자 애를 쓴다는 것이 또한 서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의 구분이 모호하고, 해야 할 일과 안해도 되는 일의 구분도 어렵다. 어떤 경우에는 달라져보겠다는 의욕으로 안 해도 되는 일인데 해야 하는 일로 알고 덤빈다. 겨우 해내고 나면 수고에 비해 성과가 없으니 허탈한 기분이 든다. 애썼음에도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수치심의 경험이 더 이상 시도하지 않을 구실이 돼버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근접하다고 느껴진 것은 '축소 회피형'이었다. 물론 확대형의 성향도 일정부분 갖고 있고 저항형의 반응도 많이 보여왔지만 지난 삶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긴 텀을 차지했던 것은 축소 회피형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한다. 나의 감정보다 타인의 기분을 더 많이 고려한다. 그렇게 살다보니 '내가 원하는 것'의 경계조차 흐릿해졌고 '내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도 당연히 모호해졌다. 사람들을 만나서 왁자지껄한 시간을 가져도 해방감이나 시원함보다는 소진되는 느낌, 몸의 피로감이 더 컸다. 자연스레 모임과 만남의 기회도 줄어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타인과 나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내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다. 기준과 기분에 따라 적절하게 거절하고 양해를 구하고 나중을 기약하려 한다. 눈치를 보며 휘둘리기보다는 나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주장을 표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쁨을 늘려가는 과정에 있다. 저자의 사례들을 읽어나가며 나의 과거를 이해하고 공감했고, 인정과 수용을 통해서 더 나은 삶을(나의 기준에 따른) 가꿔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우리의 오해받지 않을 권리
회피로 가득했던 나의 삶을 직시한다. 아쉬움과 두려움을 떠올린다. 그러나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사랑한다. 인정은 수용을 의미한다. 인정은 한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상처를 수용했기에 너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고, 나의 불완전함을 기억하기에 너의 불완전함을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성장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너의 삶을 함부로 단정짓지 않는다. 때문이라며 자책하지 않는다. 덕분이라며 감사할 뿐이다. 나도 당신도 오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