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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ㅣ 잘난 척 인문학
왕잉 지음, 오혜원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철학은 어렵다. 불편하다. 도무지 정이 안간다. 배워봤자 쓸모 없을 것 같다.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하지만 철학자도 사람이다. 철학이 그토록 쓸모없는 학문이라면, 인류의 긴 역사와 더불어 발전되어 왔을리 없다. 우리가 철학에 대해서 느끼는 불편함은, 철학과 제대로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에 갖게 된 단편적 느낌일지 모른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들도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철학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사람과 사람 사이, 삶의 공간에서 태동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그 사실을 만나볼 수 있는 친근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철학잡학사전>은 철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은 대중서다. 철학이 삶에 필요한 이유, 유명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에피소드 등 평소 철학과 거리가 멀었던 보통의 사람들이 철학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1장-도대체 철학지 뭐지]에서는 철학의 의미와 철학이 삶과 연결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2장-철학자들의 유쾌 통쾌 에피소드]에서는 유명 철학자들과 관련된 숨은 일화들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의 인간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3부-철학자들은 왜 삐딱하게 생각할까]에서는 '제논의 역설'과 같은 대표적 철학 명제들을 해석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4부-철학자의 품격]에서는 '~주의'로 일컬어지는 철학 이론들을 간단 명료하게 배워본다. [5부-세상을 뒤흔든 이 한마디]에서는 "지옥이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처럼 잘 알려진 명언들의 배경과 의미를 알아본다. 책의 제목대로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부-세상의 모든 철학]에서는 동서양의 유명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 한 페이지씩 간결하게 배워본다. [7부-한방에 끝내는 철학 용어]에서는 '변증법', '형이상학' 처럼 낯선 철학용어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한다. 종합하면 철학에 대해서 '넓고-얕게' 훑어본다. 철학과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랐던 분들께 '여기서부터'라는 적당한 기준점을 제공받는, 흥미로운 사귐의 시간이 될 것이다.
197 그의 철학 사상은 인생은 부조리하고 현실은 구역질나며 인간은 하나의 실존으로서, 실존은 본질에 앞서며 인간은 존재할 수도 선택할 수도 자유롭게 창조할 수도 있다. 그런 뒤에 자신의 본질을 얻으며 자아 본질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은 나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며 나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끼쳐 나의 선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을 '나'와 '그들'로 구분 짓고 '자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해야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챕터는 [5장-세상읠 뒤흔든 이 한마디]에서, "지옥이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다룬 부분이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로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넘어 실존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준 철학자. 그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심지어 '타인은 지옥'이라고 칭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돌아보며 "나를 누구로 다듬어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반대의 영역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누가 아닌가", "나를 누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내가 누구라는 것은 내가 누가 아니라는 것이며, 나를 누구로 만들어간다는 것은 나를 누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바로 '경계'의 문제다. 줄탁동시처럼, 나와 내가 아닌 부분을 동시에 알아차리며 다듬어간다는 것은, '자아형성'이라는 고되지만 값진 여정에 있어서 유용한 관점의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이 책 92페이지에서 다뤄진 '긍정이 곧 부정이다'라는 스피노자의 명제에서도 작은 영감을 얻은 덕분에 발견한 관점이다. 앞으로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서, 나와 타인 사이에서 굳건한 중심과 분명한 경계를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