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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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체를 좋아한다.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던 시절, 그의 철학으로부터 현실을 딛고 일어설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당면한 불안을 '과정'으로 치환하며, 다가올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자기혐오로부터 벗어나 자기조각의 여정을 향해 나아갈 의지를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니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생애와 학문적 체계에 대해서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닿을때면 흥미로운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삶으로서의 철학'으로부터 '학문으로서의 철학'으로 살금살금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오늘, 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난 후 삶의 어느 자락에서 철학을 만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 철학을 삶으로 가져올 시간이다."

삶과 연결된 철학 이야기
이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노자 철학 연구로 유명한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의 저서다. 2015년 건명원에서 진행된 5회의 철학 강의를 엮은 책이다. 철학에 관한 책이지만 철학적 지식을 담은 책은 아니다. 저자는 철학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즉, 삶과 연결된 철학의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의 목적은 철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철학하는 것이다. 이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로 연결된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갖게되는 것이다. 훈고적 태도나 타인의 시선이 아닌 인문적·철학적·문화적·예술적 시선이다. '우리'가 아닌 '나'로서 우뚝 서게 된다. 책임감을 가지 삶의 주체로서 자유롭게 세상과 교류한다. '의미'를 잃은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대다. '나'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자신을 찾고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갈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탁월한 철학은 그러한 시대적 조류속에서 피어올랐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은 대답이 아닌 의문이다. 삶과 연결된 철학과 만남으로써 사유의 시선을 확장하기를 기대하는 모든 분들께 의미있는 독서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독립적 주체로 우뚝 설 용기
15 짐승처럼 덤비면 짐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인간이 된다. 너무 인간적이면 자잘한 인간으로 남는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활짝 열기 위해 마음속에 야수를 한마리 키우자.

197 철학적 수준의 사고를 하려면 독립적 주체로 우뚝 서야 한다. 그런데 독립적 주체로 우뚝 서면, 기존의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게 보이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마주친다. 불안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 독립적이지 않은 사람은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이것을 해소하여 편안함으로 바꾸려 한다. 독립적 주체는 불안을 편안하므로 바꾸려 하지않고 불안 그대로를 감당한다. 그대로 품어버린다.

저자가 제안하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한 철학의 4단계'는 [부정-선도-독립-진인]의 과정이다. 각각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며, 익숙한 나로부터 벗어나서, 인격적으로 참된 자신을 찾는다는 의미다. 니체가 말한 바 있는 인간의 3단 변신, [낙타-사자-어린아이]의 과정이 떠오르기도 하는 제안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짐승'이 되라는 저자의 제안이었다. 세상과의 불화를 자초하는 것이 바로 용기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다. 세상과 불화하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불화를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무의식 속 내밀한 영역에 숨어서 이따금씩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하는 상처, 후회, 불안, 수치심같은 것들과도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서 내적 회피나 외적 도피를 선택한다. 자극적이고 중독성있는 오락거리를 선택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게임, 쇼핑이나 도박처럼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피와 도피는 지난 나의 삶에서 빠트릴 수 없는 단어이다. 조금만 위험해보이거나 실패가 걱정된다면 도전을 주저하며 도피했고, 조금만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이 떠오르더라도 다른 정신세계로 회피했다. 그러나 최근의 어느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작은 직면'을 시작하고 있다. 자신과의 불화를 어느정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이 책을 읽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바로 세상과의 불화를 자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과의 진솔한 직면과 화해로부터 비롯된 굳건한 중심으로, 삶의 불균형을 향해 짐승처럼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갖게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어내는 시선
127 보통은 유물들 하나하나를 보고 평가하거나 감탄한다. 그런데 박물관 자체가 갖는 높이를 포착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낄 정도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유물들 하나하나에 시선이 머무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유물들 하나하나를 보고 감탄하면서, 종국에는 그 유물들 하나하나를 가능하게 한 그 시대 그 문화권 사람들의 동선을 읽는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움직임의 패턴을 찾아 읽는 것이다.

2강의 '선도',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내는 지성적 힘으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는 파트에 담긴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박물관이나 갤러리는 인간의 지성을 성장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성장된 지성의 높이를 가져야먄 더욱 깊게 음미하며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부터 아이들을 인솔하여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오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이 파트를 읽고 지난 수업에서 나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에만 온통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안전하게, 별탈없이, 내가 해야 할 설명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결과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활동의 말미에 아이들이 초반의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모습에 나도 속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설명이 재미없음'을 원인으로 꼽았다. 보다 흥미롭고 재치있는 비유를 써서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꾸며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나조차도 해당 유물에 빠져들지 못했던 것이다. 나에게 유물은 '설명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안에서 문화의 흐름을, 사람이 그리는 무늬를 읽어내지 못했다. 말하는 사람조차 몰입하지 못하는 주제를, 어떻게 듣는 사람이 몰입할 수 있을까. 다음번 관람에서는 당장 나부터 유물로부터 사람과 삶을 떠올리기를, 무늬를 상상할 수 있기를, 그럼으로써 흥미와 몰입에 뛰어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나의 뛰어내림을 위하여
220 푸코는 이런 종속적 주체성을 벗어나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능동적 주체란 무슨 의미인가? 자기만이 자신의 주인인 주체다. 자신이 하는 판단과 행위가 모두 자기의 결정으로부터 나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주체, 이 사람이 능동적 주체다.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는 여정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그동안 지나온 배움과 성찰의 과정은 '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 후회와 상처와 수치심이라는 내면의 두려움과 직면하고, 삶의 과정속에서 나의 의지나 타당한 근거에 관계없이 무심코 수립된 '당위의 체계'를 해체하며, 자발성으로부터 비롯된 '나만의 신념체계'를 조각하기 위해 애썼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독서는 '세상과의 연결다리'를 놓아주었다. 자유로운 삶의 주체인 나로서, 세상을 향해 야수처럼 뛰어들 수 있어야 함을 다독였다. 늘 걱정이 많아 걱정이었다. 과거의 실패와 미래의 두려움은 달려들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용기를 내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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