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이라는 무기 - 자극에 둔감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롤프 젤린 지음, 유영미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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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 한 사람의 삶과 한 사람의 삶이 경계에서 만난다는 것. 한 사람의 은밀한 우주와 한 사람의 유일한 우주가 서로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대화는 생기와 활력과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 대화는 정말이지 피곤한 일이다. 오감의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끊임없이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상대방이 쏟아내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온몸으로 받아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화를 끝마치고 돌아오면, 몸과 머리의 피로감에 기진맥진해지기 마련이다. 온 몸으로 세상의 신호를 받는 사람,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흡수하는 사람. 바로 '예민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예민함, 약점이 아닌 무기?
이렇듯 예민함은 흔히 부정적인 기질로 인식되어 왔다. 평균적 기준을 넘어선 반응은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며, 그 무엇보다도 예민한 당사자를 피로하게 만든다. 이에 사람들은 예민한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지적하고, 예민한 당사자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런데 정말 예민함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하지만 독일의 심리학자 롤프 젤린은 '예민함'이 결점이 아닌 강점이라고 말한다. 사용법을 몰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 건설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 '예민함이라는 무기'에 담긴 이야기다.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의 저자 롤프 젤린은 독일 최고의 관계 심리학자다.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바람직하게 살기 위해 심리 치료 공부를 시작했으며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술들을 계발하고 내담자들에게 적용해왔다. 그런 저자가 몇 해 전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이 예민한 사람이며, 지금까지 상담자로서 해온 노력이 '예민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 책의 이름이 바로 '일레인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다. 아마도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예민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예민함을 삶의 이점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기술을 제안한다. 지각, 사고, 감정, 의사소통, 에너지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민함의 수용에서, 예민함의 확장으로
나는 이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아직 읽지 못했지만, 얼마 전 다른 책을 읽고 나의 예민함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다. 바로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다. 그리고 이 책 <예민함이라는 무기>를 읽고 예민함에 대한 긍정적 관점전환을 넘어, 수용과 활용과 확장에 이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과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를 읽고 좋은 느낌을 받았던 독자라면, 이 책 역시 너무나도 반가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3번째 읽어나가는 순간까지도 지속적인 반가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민해서 피로감에 시달렸던 분들께, 예민함이 삶을 제약하는 약점처럼 느껴왔던 독자들에게, 예민함의 수용을 넘어 삶을 확장하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줄, 유익하고 흥미로운 성장의 독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감각의 홍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24 똑같이 숲속을 걸어도 예민한 사람은 더 많은 인상을 받고 사물이나 현상들 사이에서 더 많은 연관성을 감지한다. 콘서트나 박물관에서도 일반 관람객보다 높은 감수성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리곤 한다. ... 세상의 고통을 보며 스스로도 굉장한 고통을 느끼게 되고, 이런 감정에 압도되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게 되기도 한다. ... 받아들이는 자극이 너무 많아서 고통스럽다. 많은 자극을 소화하고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더 많은 것을 감각한는 사람들이 있다. 더 많은 사유와 감정의 가지를 뻗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사건을 겪고도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언뜻보면 부러운 일 같다.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감각과 감동 그 자체가 목적인 경험이라면 분명히 부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감각의 스위치를 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갈등들, 대인관계, 업무처리에서까지 과도하게 활성화된 감각들은 감각의 주체를 압도한다. 이런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은 보통의 사람들과 사뭇 다를 것이다. 그러니 자주 지치고 피로해진다. 몸과 마음의 피로는 일상의 영민함을 갉아먹고 생각지 못한 실수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피곤한 사람이 주의력과 집중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감정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니 말이다. 그러니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이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이 넘치는 감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중심을 잃은 대화, 나를 잃는 대화
128 스스로의 상태를 지각하지 않은 채, 주의력을 바깥으로만 향하면 에너지가 자신에게 머물지 못한다. 그러면 에너지 관리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면 에너지 출혈이 커지고, 중심을 잃게 되며, 스스로를 중심에 놓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자신을 무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계를 훌적 넘어버리게 되고, 삶에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나 역시 그랬다. 이따금 온 몸의 감각을 상대방에게만 집중한채 대화를 나누고는 했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소재를 바꾸고 취향을 바꾸며, 심지어 신념마저 흐리고는 했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상대방이 불편해짐으로써 내가 불편해지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위한 맞춰줌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결코 나를 위한것이 아니었다. 대화의 끝에 남는 것은 허무함과 피로감과 자기소외의 공허감이었다.

저자는 '중심'을 이야기한다. 상대방에게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그 순간에도 중심은 반드시 자신의 몸에 두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의식적인 지각을 통해 스스로를 중심해 놓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26페이지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자각과 기록의 연습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명상과 자기탐구를 적절히 배합한 것 같은 질문들은,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몸의 중심과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의 시간이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의식적 자각', 그리고 '마음챙김'
저자는 이러한 자신만의 '의식적 자각' 방법을 제시하며 '마음챙김'과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나아가 예민한 사람들에게 마음챙김은 맞지 않으며 오히려 더 괴롭고 과민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순진하게' 신체를 지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자신의 지각을 지각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약간의 의아함이 남았다. 마음챙김이 '지금 이 순간', '의식적으로', '비판단적으로' 자각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주는 지혜까지도 흘려보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호교수님의 <마음챙김 명상 멘토링>에서 분류한 기준에 따르면, '마음챙김'은 대상에 대해 주의를 기울임과 동시에 그것을 경험하는 자신에게도 약간의 주의를 남겨둔다. 따라서 경험이 나에게 남기는 흔적을, 지각에 나에게 지각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지혜'를 경험한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챙김'은 '집중명상'에 가까운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개념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자각연습'은 내가 아는 '마음챙김'과 가까우며 '자신의 중심'과 만날 수 있는 재미있고 직관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을 위한, 책에 담긴 다양한 기술들
67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행동이 많은 유익을 준다.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이다. ... 하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자신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과 세계를 보는 과제가 주어진다. 이런 과제를 거쳐야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 행동을 의문시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저자는 관계의 균형을 잡도록 돕는 '경계 짓기', 자신을 알아차림으로써 스스로를 돌보는 '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기',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에서 '균형 잡힌 관계 유지하기', 생각의 휩쓸려다니는 상황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도록 돕는 '의식적인 사고', '효과적으로 갈등에 대처하는 법' 등의 실용적 방법들을 제시한다. 나의 예민함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며, 나의 중심을 잡고 경계를 세울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 고마운 독서의 시간이었다.

현자의 목소리, 최고의 지혜를 향하여
형제여, 너의 생각과 느낌 배후에는 더욱 강력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다. 이름하여, 자기가 그것이다. 자기는 너의 신체 속에 살고 있다. 너의 신체가 자기인 것이다.
 너의 신체 속에는 너의 최고의 지혜 속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성이 들어 있다. 너의 신체가 무엇을 위해 너의 최고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지를 누가 알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53

예민함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감각이다. 감각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몸이다. 철저한 이성의 숭배에 가로막혀 도구로 전락했던, 우리의 몸이다. 예민함은 어디로부터 부정되는가? 감각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감각과 감정은 어디로부터 부정되는가? 몸이다. 과도한 감각과 감정의 파도로부터 회피하는 과정에서 소외당했던, 우리의 몸이다. 니체가 말했듯, 우리는 머리가 아닌 몸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예민함은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보내는 '최고의 지혜'다. 약점이 아닌 강점, 족쇄가 아닌 날개, 바로 '예민함이라는 무기'다.

Lucia - WHO

YOU JUST GONNA BE WHO YOU ARE
32 보통 사람보다 더 민감한 지각 능력을 가진 사람은 사실 삶 속에서 더 많은 기쁨과 행복과 내적 풍요를 경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민함은 외적인 성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민함은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

그동안 예민함은 참으로 우리를 힘들게 해왔다. 몸을 지치게 만들며,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니 예민함을 탓해왔던 우리의 태도는, 예민함을 부정했던 우리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문제는 예민함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요, 그것으로부터 건강한 가지를 뻗어내지 못했던 우리의 아쉬움이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으며, 각자 다른 색깔로 물들고 있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우리를 기쁘게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된다. 소중한 나의 몸에 굳건한 중심을 갖춘 채로, 지혜로운 몸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며. 예민함에 흔들려온 우리는 이제, 예민하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이보다 강력한 무기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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