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 -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부모와 아이 사이
하라 히로코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편견과 배타성이 눈에 띄게 늘어가는 요즘의 우리 사회다. 지역주의가 조금씩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요즘은 성별을 갈라 싸운다. 자신의 좁은 편견을 충족시키는 사례를 발견하면 "역시"를 외치며 의기양양해지기도 한다. 숱한 반대의 사례에는 눈길을 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편견과 증오를 몸으로 학습하며 자란 이들이 앞으로 만들어낼 또 다른 배타성의 가능성이다. 이해와 타협과 수용이 아닌,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나는 결국 생기를 잃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이 단지 '그들의 인격이 나빠서'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X는 Y야"라는 논리적 일반화를 넘어 "X는Y야. 그래서 혐오해"라는 감정적 일반화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감정의 영역은 논리와 이성으로 다스리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진화적으로 인간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해오기도 했다. 특정한 식물을 먹고 복통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면, 그것과 비슷한 것들만 봐도 몸이 알아서 피하게 될 것이다. 해롭지 않은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더라도, 적어도 해로운 경험이 있었던 식물만큼은 분명하게 피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나도 몇 해 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며 개도 역시 좋아한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옆집 개가 밤낮으로 자주 짖어대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어느새 다른 개가 짖는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오로지 '201호 개'가 '너무 자주' 짖는것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자유롭다'는 인디언 아이들의 살아가는 방식, 특히 학습과 성장에 관한 책이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며 겪은 헤어 인디언들 삶의 면면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끼질 수업'같은 것 없이 누구나 5세 정도가 되면 스스로 장작을 쪼개서 한 몫을 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학습은 자발적이다. 묻지도 가르치지도 않으며 스스로 관찰하고-해보고-수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립을 향해 성장해 나간다. '배워야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싶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숙제와 학원에 시달리며 배움의 생기를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배움을 향한 태도'를 '일반화'하며 우리의 긴 삶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배움에 대한 일반적 불편감'이다. 그렇다면 이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배움에 대해서 갖는 불편함이 사실은 왜곡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배움에 대한 '최초의 흥미'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해어 인디언 아이들이 어른들의 도끼질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성장하듯 말이다.

149 해어 인디언의 문화에는 '가르친다, 배운다'와 같은 개념이 없고, '스스로 관찰하고, 해 보고, 스스로 수정한다'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 익힌다'고 저마다 인식했습니다.

한편 요즘 교육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메타인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메타인지란 일종의 상위인지로서, '앎에 대한 앎'을 일컫는다. 내가 무엇을 알고있는지 알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으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삶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보편적 교육은 교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교사가 학생의 지식을 테스트함으로써 점검하고, 과제와 수업을 통해 학습과정을 운영한다. 하지만 '스스로'배우는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교사의 역할 역시 스스로 해야 한다. 그러니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무엇을 알며 모르고 있는지, 무엇을 수행하며 일상을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메타인지적 능력이 발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의 교육학은 분명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으며 교수학습 또한 분명히 효율적인 교육 방식이다. 하지만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 자립' 해나가는 해어 인디언 아이들의 성장모습은, 어른이 된 뒤에도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곤 하는 우리 사회의 어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지 않을까? 자신의 아이들이 뒤쳐질까 두려워 주입식 교육을 서두르는 부모들에게도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숙고의 이유를 제공하지 않을까?

22 일곱 살 가량의 사내아이는 벌써 자기가 좋은 사냥꾼이 되리라 마음먹고 사냥기술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여자아이도 덫을 놓아 꽤 많은 토끼를 잡고, 무스가죽을 무두질하는 어른이 되고자 스스로 수련을 쌓습니다. 아이들과 젊은이는 자신감과 생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23 어른이 뭔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게 교육적 효과가 있다면 우리는 해어 인디언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 여가시간을 통해 취미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준비단계에서 완성단계가지 차근차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동경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의 완성된 모습'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는지는 배후에 감춰져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특유의 긴장감도 있지만, 결점을 가진 참가자가 회를 거듭할수록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공감의 기쁨을 경험하는 이유도 클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성장은 원래 그렇다.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인내의 단계들이 있다. 해어 인디언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해나간다.

우리 아이들의 삶도, 그것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삶도, 나이에 걸맞는 '보편적 기준'만을 의식하며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결국,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자신만의 의지로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닐까? 그런 사람에게 자신감과 생기는 자연스럽게 풍겨나오는 향기와 같은 것일테니 말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해어 인디언 아이들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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