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기술 - 나쁜 감정을 용기로 바꾸는 힘
크리스틴 울머 지음, 한정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족발을 얻어먹었다. 전문사회자 같았다는 칭찬도 받았다. 기분이 좋았고 보람을 느꼈다. 얼마 전 친한 선배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고 답례의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사실 무대 체질이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 그 누구보다 긴장하고 떨리며 불안해한다. 그런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 그래서 꼼꼼하게 준비했다. 억양과 강세, 속도와 완급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기억했다. 한편으로 마음챙김을 통해 당장의 불안에 대응하는 기술도 준비했다. 이러한 내용적 기술적 준비 덕분에 즐거운 저녁식사와 뿌듯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무언가를 얻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쁜 결과를 피했다. 불안에 압도되어 의미있는 사람의 의미있는 시간을 망쳐버리는 것, 그 나쁜 결과를 피하기 위해 더욱 꼼꼼하게 준비했다. 나를 움직이게 한 동기에는 '좋은 결과'를 이뤄내고 싶은 지향도 있었지만 '나쁜 결과'를 피하고 싶은 두려움도 있었다. 두려움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게 아니라, 두려움과 키스를?
흔히 '두려움'이라고 하면 '극복'을 떠올린다.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부정적 대상으로서 두려움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 '두려움의 기술'은 두려움과 관련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심지어 연애하고 키스하라고 이야기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무릇 두려움이란 타파의 대상이 아닌가? 록키 OST를 틀어놓고 눈을 부릅뜨며 강력한 정신력을 통해 돌파해야 할 방해물이 아니었던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도전함으로써 끝내 승리의 깃발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 아니었던가?

'겁 없는 스키선수'에서 '심리상담사'로
견해의 독특함만큼 저자의 이력 또한 특이하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틴 울머는 '세상에서 가장 겁 없는 여성 스키어'로 꼽힌 바 있는 前미국 모굴 스키 국가대표 선수다. 그리고 은퇴 후 현재는 심리 상담사로 활동하며 '두려움'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그녀가 최고의 선수로 활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려움의 극복'이 있었다. 하지만 무의식 깊이 각인된 '두려움에 대한 무시'는 그녀의 삶을 아프고 병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체험과 연구 끝에 두려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에는 스키선수로서의 체험담, 위험과 스릴을 즐겼던 여행 경험들, 두려움의 원리, 두려움을 대하는 일반적 통념의 문제점, 두려움을 수용하는 구체적 방법론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스스로 두려움이 많아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이 책의 독서는, 관점의 전환을 통해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성장의 시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두려움, 알고보면 소중한 친구
60 도마뱀의 뇌는 5억 년 동안 발달해왔다. 이에 비해 생각하는 마음과 컨트롤러는 겨우 200~300만 년 동안 존재해왔다. 기나긴 우주 역사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두려움을 아무리 통제하려고 해도 두려움은 계속해서 돌아와 결국 당신을 압도할 것이다.

95 당신이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나쁜 목소리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그것이 당신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흔히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말하는 이들은 두려움을, 다룰 수 있는 통제의 대상인듯이 이야기한다. 두려움의 극복이, 연습과 훈련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인지기술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두려움이 발생되는 '도마뱀의 뇌'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감정에 압도되었을 때 '생각'만으로 평정심을 되찾기 어려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두려움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중독이나 신경증, 분노와 같은 예기치 않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두려움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기나긴 생명의 여정과 함께해온 소중한 벗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다.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두려움과의 연애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알게 해주며, 회피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선물해줄 것이다. 

두려움과 함께, 삶의 확장으로
342 두려움을 존중하면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두려움을 존중함으로써 당신은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신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근본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을 존중하면 강해진다. 행동의 책임과 영향력을 상기시키며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두려움을 존중하면 안전해진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두려움을 존중하면 시야가 선명해진다. 내면의 지혜가 말해주는 가능성들을 발견함으로써 더 나은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 두려움을 존중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두려움을 억압하는데 낭비되던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고, 감정연료를 활용함으로써 더욱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처럼 두려움의 존중과 수용은 삶의 소중한 순간들에서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한다.

두려움과 어우러질 나의 삶을 기대하며
258 당신의 마음은 생각한다. 당신의 몸은 느낀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책에는 이 외에도 두려움과의 연애에 이르기 위한 저자만의 구체적 기술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264페이지에 제시된 '몸과의 대화' 방법과, 292페이지에 제시된 '저자가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 해설이 직관적이며 실용적인 도움을 주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온몸에 힘을 주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새로운 관점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성장의 시간이었다.

나는 쫄보다. 겁쟁이다.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은 언제나 내 정신세계의 대주주였다. 그 과정에서 머리는 과부화되고 몸은 탈진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쏟아부었던 에너지의 상당수는 두려움을 회피하고 극복하는 과정에 소모되었던 것 같다. 그 모든 에너지를 '두려움 너머의 현상'을 현명하게 해결하는데 사용하였더라면, 더 나은 결과와 충만한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두려움이라는 적이 많아 무거웠던 삶이, 이제는 두려움이라는 친구와 함께 한껏 경쾌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역시 기쁜 일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그 모든 과정을 돕는 소중한 신호이자 힘의 원천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한 후자의 감사함을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

두려움을 떠올린다. 몸으로 드러난 두려움의 신호를 듣는다. 내가 질문하고 그가 대답한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친구다.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하는 지금 여기에서부터의 삶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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