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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평점 :
마음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치열한 경쟁, 각박한 관계, 부조리한 사회가 여물어가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욕과 의미를 잃은 채 절망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우울의 늪에서 아파하고는 한다. 나 역시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나름의 이유로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방황했고, 나름의 방법으로 다시금 삶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과정에 있다.
뇌과학자가 풀어내는 우울증 이야기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우울. 그렇다면 일상 속에서 스스로 우울을 개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울의 실체를 확인하고, 뇌과학적·신경생리학적 작용원리를 이해하며, 이러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한 개선방법을 체화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우울로부터 행복을 향해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우울할 땐 뇌과학'은 우울에 관한 과학적 접근을 담은 이야기다. UCLA에서 뇌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5년간 우울증을 연구해온 저자가, 뇌과학·신경생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우울증 이야기를 담았다. 최신과학을 바탕으로 한 우울의 원인과 해법을 배움으로써, 일상의 삶을 생기있기 가꿔나가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실용적인 독서의 경험이 될 것이다. 뇌과학에 대한 낯선 전문용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난이도의 측면에서 보통의 대중들을 충분히 배려했다고 느껴졌다. 따라서 뇌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건강한 마음을 위한 조력자인 심리상담, 정신과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자기자신과 사랑하는 주변인들의 마음을 보살피기 위해, 책의 내용을 배우고 체화해두는 것도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뇌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우울증
10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갖고 있는 회로는 모두 같지만 각 회로가 구체적으로 조율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그 모든 회로가 상호작용한 결과 생기는 활동 패턴 중 하나다. 별일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 힘이 미치는 효과는 대단히 파괴적이다.
14 뇌의 두 부위, 구체적으로 전전두피질과 변연계가 우울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단순하게 말해 전전두피질은 생각하는 뇌 부위이고 변연계는 느끼는 부위이다. 우울증은 이 영역들이 작동하는 방식, 서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생긴 상태다.
저자는 우울증이 뇌과학·신경생리학적 차이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뇌의 회로가 활동하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우울증 환자가 갖는 뇌의 특성을 특정해낸 덕분이다. 즉 우울증 환자는 뇌의 특정부위가 과활성되거나 저활성된 패턴을 보이며, 이러한 패턴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과학적 방법론을 시도함으로써 뇌를 재배선하고, 나아가 뇌의 작용인 우울이라는 감정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을 극복하는 뇌의 재배선을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다양한 방법들을 이야기하는데 그 중 두 가지가 '운동'과 '괜찮은 결정'이다.
운동, 최고의 항우울제
133 운동은 항우울제가 뇌에 미치는 효과와 동일한 여러 효과를 발휘하고, 심지어 기분전환 약물이 주는 취기를 흉내 내기도 한다. 운동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꽤 미묘하면서도 목표가 분명한 뇌의 변화를 야기하고 심지어 약물이 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혜택을 준다.
운동이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막연한 좋다'와 '구체적 좋다'는 분명히 정도가 다른 의욕을 불러 일으킨다. 흔히 알려진 신체적 건강증진 외에, 운동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심지어, 충분한 운동은 항우울제와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운동 시작의 문턱에서 갖가지 이유들이 불쑥 자신을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피로감, 시간 아까움, 귀찮음, 효과에 대한 회의감, 춥거나 더운 날씨, 게임 등 갖가지 이유가 고개를 들며 안하던 짓 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유혹할 것이다. 이 때 운동으로 인한 정신적 개선의 효과들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BDNF를 증가시켜 문제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주며, 세로토닌을 증가시켜 동기부여와 의지력을 키워주고,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켜 집중력과 사고력을 높이며, 도파민을 증가시켜 집중력과 의사결정능력을 높여준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나열하지 않은 몇 가지 효능이 더 있다. 이 정도면 당장 운동화 끈을 조여맬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모든 유혹들을 상쇄하하고도 남을만큼 넉넉한 효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읽고 틈 나는대로 꾸준히 달리기를 실천해오고 있다. 마음이 산란할 때 무작정 달림으로써 과장된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러닝화 밑창이 닳아갈수록 마음의 평정은 더해져갔다. 하지만 이사를 한 이후 달릴만한 장소가 가깝지 않다는 이유로 한동안 달리기를 등한시했던 것 같다. 이번에 되새기고 학습한 이유들을 바탕으로 당장 내일 오랜만에 러닝화 끈을 조여매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최선의 결정'보다, '괜찮은 결정' 하기
154 최선의 결정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결정을 내려라. ...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최선을 해내려 하면 의사결정 과정에 지나치게 감정적인 복내측 전전두피질을 끌어들이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걸로 충분하다고 인식하면 복외측 전전두영역이 더 활성화되어 자신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이따금 불필요한 완벽을 추구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받고는 한다. 이를테면 한정된 예산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며 이것을 넣었다 저것을 뺐다 하며 결정장애로 인한 스트레스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을 넣자니 저것이 아쉽고 저것을 넣자니 이것이 허전하다. 사실 이렇게 고민할 정도라면 그 효용의 차이는 미미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시안적 편협함에 매몰되어 '완벽'을 추구하며 시간과 정신력을 낭비하고는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따로 있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나의 성향이 감정적 뇌 영역을 활성화시켰고 부정적 정서가 확산되며 판단력을 잃고 최선의 선택으로부터 멀어져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만족을 위한 완벽의 추구가 오히려 만족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그동안 비슷한 패턴으로 실패와 스트레스를 겪었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분명한 목표'를 향한 '괜찮은 결정'으로, '과감한 한 걸음'에 나섬으로써 건강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우리의 중심을 위하여
책에는 이 밖에도 수면, 습관, 바이오피드백, 감사, 사람, 전문가 등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마음의 중심을 획득하기 위한 구체적 기술들을 제안한다. 각각의 기술이 발휘하는 효과가 상이한 만큼 하나씩 체화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한편으로 서평을 적어내리며 약간의 걱정도 든다. 현실적 방법론을 시도하지 않은 '탓'에 우울한것처럼, 방법론들을 시도함으로써 '뚝딱' 우울증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분들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울의 근본적 원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뇌의 각 부위는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서 작용하고 있기에 특정 질병의 근본적 원인을 단순화하여 규정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사람 사이의 복합적 사건을 '누구 탓'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마음이 아픈 당사자와 그 주변분들은 적어도 쉽게 '환자의 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래'처럼 무심하고 무책임한 말로 상처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저자의 처방 또한 전적으로 신뢰한다. '뚝딱'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향성을 상실한 이들에게 하나의 새로운 습관도 버거운 도전일 것이다. 하지만 우직하게 꾸준하게 나아간다면,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당신도, 우리도 마음의 중심을 분명하게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