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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자치를 말하다 - 교사들이 들려주는 학교자치 현장의 이야기 ㅣ 자치를 말하다
백원석 외 지음 / 에듀니티 / 2021년 9월
평점 :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지방에서 입결이 꽤 좋은 여고였다. 아침7시부터 방송, 8시에는 0교시,..., 점심, 저녁을 먹고나면 야자라는 이름의 강제적인 학습을 밤 11시까지 해야하는 살인적 스케쥴의 강압적인 학교였다. 또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 질문한 교장선생님이 우리의 "학생이지요" 라는 대답에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님"이시라고 당당히 밝히셨던 사립학교이기도 했다. 학교자치와 거리가 너무 멀고 그 당시에도 이미 십수년 전에 끝나서 우리도 경험해보지 못한 군부독재 시절을 상상하게 만드는 학교가 바로 우리 학교였다.
당시 우리 학교의 전교 임원은 교사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는 2학년 학급임원 1명을 지명해서 찬반을 묻는 수준의, 심지어 학급 회장단들만 선거에 참여하는 간접 선거로 선출되고 있었다. 우리 학급의 임원인 친구가 교사들의 지명을 받지 않았음에도 자의적으로 전교임원 선거에 나갔고 교사들이 추천한 친구 대신 그 친구가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는 일이 있었다. 불안한 교사들의 우려에 따른 강한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회장직을 잘 수행한 친구 덕분인지 교사들의 추천없이 전교 임원 후보를 지원하는 후배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고, 직접 선거권을 얻어냈다는 소식이 몇년 후에 들렸다. 내가 경험한 학교자치의 첫 모습이었다.
열과 오를 맞춰서 깔끔하고 조용하고 일이 착착 진행되는 교실에 있는 것이 편안하다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학교자치'라는 제목에서 시끌시끌함이 넘치는 곳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학생생활규정이나 인권조례 등을 들으면 빨강파랑노랑으로 염색한 아이들이 떠오르고, 선생님께 무례하게 대드는 교실 붕괴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다. 또 학교가 조용히 굴러가기 원하는 학교측과 반기를 들고 재단의 비리를 밝히려는 해직교사의 다툼과 같은 거대악과의 싸움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학교자치를 말하다에서는 학교민주주의, 교실민주주의, 학생자치, 교직원자치, 학부모자치, 학교자치와 조례와 같은 6개의 챕터를 가지고 현장의 학교자치 실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학교 자치가 거대악과의 치열한 싸움처럼 거창한 것도 껌을 씹고 비뚤게 서서 대립하는 아이들과 교사의 싸움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게하는 권리, 그 권리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편안한 강제 가운데 큰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살다가 자치권을 받게되면 웅성거리게 되고 많은 말이 들리게 되고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다. 겪어본 적이 없고, 실행해 본 적이 없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가지고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작은 사회에서 자치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보아야 더 큰 세상에 나가서 더 올바른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학교자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