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이제 무거운 추로 변신해 있다. 그렇게 머리를 땅으로 끌어내린다. 이대로 잠들면 다시 깨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지만, 차라리 잠이 들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침내 자비로운 잠이 찾아온다. - P27
선생님 또한 오컬트 세계의 시민인 것이다. 연희 선생님이 그다음에 덧붙인 말은 그 세계의 주민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그 남자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고는 생각했어. 처음 본 사람 같지 않고." - P40
어떤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 적어도 자신의 기호에 맞는 외모의 사람을 보면 낯설더라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익숙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마음의 경계가 약해지고, 거리가 확 줄어드니까. - P40
얼굴이 깨끗해서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깨끗하다는 것은 주름이 없다거나 피부가 곱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생김새와 표정 둘 다 세상의 비바람에 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연희 선생님 및 가족들이 그를 걱정하는 이유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지만 남을 잘 믿어줄 것 같은 투명함이 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피로감도 베일처럼 얇게 덮여 있었다. - P42
"전생이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졌던 어떤 기질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요." - P54
"무슨 뜻이죠?" "예를 들자면・・・・・・ 이유를 말할 순 없지만 무엇에 대한 혐오라든가, 반대로 애정이라든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떤 감정들. 그런 데 운명 같은 느낌이 들 때.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듯한 데자뷔. 그런 현상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전생이 존재하는 거죠." - P55
"그랬을 수도 있죠." ‘이었을 수도‘가 너무 많다. 모든 건 추측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추측들 사이에 진실이 있다. - P92
내가 지완의 책장에서 꺼내온 『로미오와 줄리엣』의 희곡집에는 이런 부분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천국은 줄리엣이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죠. 고양이와 개, 생쥐 같은 하찮은 것들도 여기 천국에 살며 줄리엣을 볼 수 있는데 이 로미오는 보지 못하죠.
동그라미는 천국과 줄리엣, 개라는 단어 위에 그려져 있었다. 천국은 로미오가 없는 곳. 줄리엣과 개가 함께 살고 만날 수 있는 곳. - P100
"형이 누구를………… 무엇을 연기했든 여전히 거짓말 일 수 있어요." "알아. 믿기 쉬운 얘기는 아니잖아, 하지만…………." 나는 늘 ‘하지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질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믿기 어려운 일만큼, 믿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어."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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