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친구라고 해서 모두가 쉽게 친해질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를 모아놓으면 서로 알아서 친분을 쌓을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남에게 벽을 잘 세우지 않는 사람일수록 그러하다. 그렇게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 친구들 사이의 공통점을 잘 찾아내기 때문에 자신으로 연결된 사이에서도 그런 공통점을 발견할 거라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교집합이 있는지는 늘 미지수의 영역이었다. 타인에게서 공통점을 찾고자 하는 열의도 일종의 기질이다. - P235

성현은 내게 이 방에 있는 코끼리였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코끼리. - P243

합리가 설명 하지 못 할 때, 인간은 오컬트 빠지게 된다 - P267

마법은 모를 때만 힘이 강력하다. 알려진 트릭은 탄산이 날아간 탄산수처럼 밋밋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걸린 줄 모르는 마법은 영 깨어지지 않는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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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화이트보드가 아니라서, 지우개질 한 번으로 과거의 감정을 깨끗이 지울 순 없다. 그래도 나는 타인의 마음을 이용하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 첫사랑이라는 이유로 끌려다니는 남자를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부부 생활에 대해 뭘 알겠는가?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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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평범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타인에게 오만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자신의 성과를 축소시켜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기도 하다. 성취를 겸손하게 보이되 타인을 적절하게 부러워할 줄 아는 기술이 인간관계에서는 필요하다. - P142

"오오, 그러면 전 세계에서 장주은 차기작 프로젝트를 아는 소수에 낀 건가. 대단한 영광인데."
우리 뒤에선 이 변호사가 뿌듯하게 말했다. 나는 그가 반드시 어디 가서 말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프더레코드라고 한 말까지 그대로 전할 사람. 변호사로서는 좋은 자질일 것 같지 않았다. - P155

이 부부의 패턴이었다. 남편은 아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한다. 아내는 그를 얼버무린다. 이젠 눈치챌 때도 됐는데 일부러 그러듯이 반복하여 남편은 아내를 곤란하게 한다. 아직까지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놀랍지만 그러니까 부부이기도 할 것이다. - P155

"뭐야, 경험담이야?"
"자기 경험이 반영되지 않은 영화가 어디 있겠어. 모두 자기 경험을 이리저리 끌어서 다른 옷 입히는 거 아닐까." - P156

고립은 물리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실은 나 또한 이 기묘한 대학 친구들 모임에서 고립되어 있는 상태였다. 연희 선생님은 어떤 면에서는 친구였지만, 친구도 일종의 행성간의 관계와 같아서 더 가까운 쪽이 있다면 적용되는 중력이 다르다. 그들이 하나의 계를 이루는 행성이라면 나는 연희 선생님 주위만을 도는 달 같은 존재였다. - P164

헌의 얼굴을 처음 보고 들었던 감정은 역시 안도감이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또 다른 행성을 만난 것도 같은 기분이 동굴의 습기처럼 스며들었다. - P165

떨린다는 말은 재미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추울 때도, 갑자기 따뜻해질 때도 몸은 떨린다. 두려울 때도 설렐 때도 마음이 떨린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의 손도, 그 손에 든 방망이도.... - P181

연희 선생님이 한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다.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엄마는 그럴 때는 밥을 꼭꼭 씹어서 같이 삼키면 넘어간다고 했지만, 나는 얼마 전에 읽은 신문의 의학 칼럼을 통해 그렇게 했다간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야기도 비슷하다.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삼킬 수도 있지만, 뱉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후회하게 된다고 해도 목에 걸린 채로 잠들 수는 없다. - P183

한 사람의 성공이 파도와 같은 것이라면 마음에 남은 앙금을 깨끗이 씻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로 복수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성공했기 때문에 그를 수단 삼아 잃어버린 걸 찾고자 한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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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평소에 가까이 두었던 책들만 있어요."
장 감독은 내가 보르헤스 선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좋아해요? 우리 학교 다닐 때 라틴 문학 붐이 있었어서. 나는 많이 읽었는데."
"저도 좋아해서 읽었는데, 생각나는 건 그………… 「아스테리온의 집밖에 없네요."
"미노타우로스 신화를 좋아해서?"
오늘 만나서 처음으로 장 감독이 내게 개별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테스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거리 감각을 조절하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질문. 나처럼 남에게 이야기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얘기를 털어놓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고자 한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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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이제 무거운 추로 변신해 있다. 그렇게 머리를 땅으로 끌어내린다. 이대로 잠들면 다시 깨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지만, 차라리 잠이 들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침내 자비로운 잠이 찾아온다. - P27

선생님 또한 오컬트 세계의 시민인 것이다. 연희 선생님이 그다음에 덧붙인 말은 그 세계의 주민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까 그 남자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고는 생각했어. 처음 본 사람 같지 않고." - P40

어떤 사람들은 잘생긴 사람, 적어도 자신의 기호에 맞는 외모의 사람을 보면 낯설더라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익숙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마음의 경계가 약해지고, 거리가 확 줄어드니까. - P40

얼굴이 깨끗해서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깨끗하다는 것은 주름이 없다거나 피부가 곱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생김새와 표정 둘 다 세상의 비바람에 상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연희 선생님 및 가족들이 그를 걱정하는 이유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지만 남을 잘 믿어줄 것 같은 투명함이 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피로감도 베일처럼 얇게 덮여 있었다. - P42

"전생이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졌던 어떤 기질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요." - P54

"무슨 뜻이죠?"
"예를 들자면・・・・・・ 이유를 말할 순 없지만 무엇에 대한 혐오라든가, 반대로 애정이라든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떤 감정들. 그런 데 운명 같은 느낌이 들 때.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듯한 데자뷔. 그런 현상들에 대한 설명으로서 전생이 존재하는 거죠." - P55

"그랬을 수도 있죠."
‘이었을 수도‘가 너무 많다. 모든 건 추측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추측들 사이에 진실이 있다. - P92

내가 지완의 책장에서 꺼내온 『로미오와 줄리엣』의 희곡집에는 이런 부분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천국은 줄리엣이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죠.
고양이와 개, 생쥐 같은 하찮은 것들도 여기 천국에 살며
줄리엣을 볼 수 있는데 이 로미오는 보지 못하죠.

동그라미는 천국과 줄리엣, 개라는 단어 위에 그려져 있었다. 천국은 로미오가 없는 곳. 줄리엣과 개가 함께 살고 만날 수 있는 곳. - P100

"형이 누구를………… 무엇을 연기했든 여전히 거짓말 일 수 있어요."
"알아. 믿기 쉬운 얘기는 아니잖아, 하지만…………."
나는 늘 ‘하지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질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믿기 어려운 일만큼, 믿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어."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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