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돌았어."
"뭐?"
"지구 서쪽으로 파리로 가서 거기서 페루행 비행기를 탔어."
해미는 헤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구는 둥글잖아. 페루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반대편에 있고, 지구 동쪽으로 가는 거나 서쪽으로 가는 거나 시간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의 고정관념 중 하나가 그런 거야. 우리는 태평양을 가운데에 두고 오른쪽에 아메리카 대륙, 왼쪽에는 아시아, 유럽이 그려진 지도에 익숙하잖아. 그래야 우리나라가 가운데에 오니까. 그래서 남미로 간다고 하면 항상 태평양을 건너 동쪽으로 도는 루트만 생각해. 그쪽이 서쪽으로 도는 것보다 늘 빠르다고 착각해버리지.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세계지도를 보면 대서양을 가운데 놓고 오른쪽이 유럽, 왼쪽이 아메리카야. 그래야 그들이 가운데쯤 오니까. 그래서 우리나라나 일본은 극동, ‘far east‘인 거고, 그 지도로 보면 남미를 갈 땐 서쪽으로 가고 싶어질 걸."
"그럼 서쪽으로 돌아서, 그러니까 파리를 거쳐 페루로 오는게, 미국을 거쳐 가는 거 하고 시간이 비슷하단 말야?"
"늘 그렇다고는 못하겠지. 주로 미국을 거치는 루트가 개발되어 있으니깐 보통은 그쪽이 빠르고 편할 거야. 하지만 그날은 운이 좋았어." -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