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우리 도지석 투자자님은 종교가 있나요?" "없는데요." "전 언제나 종교를 믿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런데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가 혹시 돌덩이 위에 있는 버림받은 존재들은 아닐까 하고요. 신도 없고, 질서도 없으면 인간이 뭘 의지해서 살아야 할까요. 의미도 모르고 비참하게 살다 사라지는 게 너무 무서워서 만든 겁니다, 지옥 서버는 우주에 의지가 없다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야하지 않겠어요?" - P75
"지옥을 만들기 전에 여러 자료를 뒤졌죠.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의 모든 종교와 신화에 등장하는 지옥을요. 하지만 거기 나오는 고문들은 일단 효율성이 없어요. 시도때도 없이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사람을 집어넣었다고 생각해 봐요. 극한의 고통만 지속되면 제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3시간도 못 버티고 정신을 놓을 겁니다. 기껏 보존한 흉악범의 자아 뉴런이 고스란히 망가진다니까요. 자기가 저지른 범죄는커녕 본인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죠. 이래서는 속죄고 처벌이고 아무 의미가 없게 돼요." "그래서......." 지석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바늘이요." - P109
"바늘이요?" "네. 수만 번 연구한 끝에 고안한 방법이에요. 사람 몸의 평균 표면적은 약 1만 7,000제곱센티미터거든요. 그것을 가로세로 1센티미터의 정사각형 구획으로 나누면 1만7,000개의 구획이 나오겠죠. 지옥 서버에서는 5분에 한 번씩이 구획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정해 7센티미터 길이의두꺼운 대바늘로 몸을 관통합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예측은 무의미하죠. 평균 5분에 한 번이라는 거지 정확한 시간도 알 수 없습니다." - P109
"바늘은 뼈가 있는 부위든 내장이 있는 부위든 반드시 7센티미터 깊이만큼 다 들어갑니다. 저희가 고안한 통증은 그런 거예요. 당하는 입장에서는 통증만큼이나 공포 때문에 미치는 거죠. 언제 어디로 바늘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은 1만 7,000개의 구획 전부로 바늘이 동시에 관통합니다. 이건 저도 상상이 안 되는 고통이에요. 다만 가장 큰 비명이 그때 나오더군요. 재미있죠? 이걸 당하는 범죄자가 있는 방의 사방, 그리고 위아래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 영상이 24시간 흘러나오고요. 법정 기록을 토대로 최대한 똑같이 재현한 영상입니다. 자신이 왜 이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절대 잊지 말라는 의미죠. 눈을 감아도 소용없어요. 죄인의 눈꺼풀은 투명 상태로 변화시켰거든요. 불안에 떨며 언제 다가올지 모를 고통만을 무작정 기다리는 겁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영상에 포위당한 채로요. 물론 죄인이 완전히 미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고안했어요.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에는 휴식을 줍니다. 어떤 고통도 없는 날이에요. 그날만큼은 범죄 영상이 아니라 어린 시절과 사랑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재생되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고통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 P110
"천국에 사는 놈들이 지옥을 만들겠다고 하는 게 징그러워서." - P121
젊은 나이에 벌써 부와 명예를 거머쥔 백철승을 누구보다 동경했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본 그는 자신들이 가진 힘에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고, 그 부분이 지석을 메스껍게 만들었다. 누구보다 안전한 자리에 앉아서는 누구보다 잔인한 상상을 즐기며 자신에게 세상을 심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 - P122
물론 지석도 악인을 향한 심판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것이 백철승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제야 지옥 서버를 응원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쾌감의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역겨움을 예민하게포착해 내는 지석 특유의 반골 기질이 이번에도 재빠르게반응한 것이다. 지석의 팔자를 사납게 만들고 그의 이마에 가난의 인장을 박아 넣은 도대체가 한심한 기질. 이것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주류 사회로의 편입을 막았다. 하지만 지석은 자신의 천성이 싫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것들 가운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 P122
토막 뉴스를 보며 지석은 지옥 서버를 지탱하는 가장 큰 원동력을 깨달았다. 분노. 닫힌 솥에 차오른 증기처럼 조용히 힘을 모으고 있던 사회 곳곳에 놓여 있던 분노.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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