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둘 다 ‘미쳤다‘는 말을 했지만 뭐가 미쳤는지 주어가 없었다. 사실 미친 건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시간이 정직하고 착실하게 흘렀을 뿐이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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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맞춤복지팀은 그 명칭대로 대상에 맞춰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 연주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를 맡았다. 미류동 내 노인주거시설이나 센터를 시찰했다. 노인회업무나 행사를 지원하며 각종 노인 관련 수당업무도 처리했다. 노인돌봄서비스에 해당하는 대상자 선정을 위해 조사하고 상담도 겸했다. 이 밖에도 분명 존재하지만, 과자부스러기만큼 자잘해 티 나지 않는 일들까지 상당했다. 아동이나 청소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일에 비해 노인 업무는 일이 많기도 많았다. - P21

그녀는 민원인들의 불만 사항을 듣는 데 주력했다. 원체 말수가 적은 탓인지 차분하게 청취하는 일에 뛰어났다. 성난 황소처럼 창구로 들이닥치는 민원인도, 평온한 얼굴로 돌아가게 했다. 연주는 그녀의 그런 점이 신기했다.
말수는 적으나 할 말은 정확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민원인의 불만 사항을 각 업무 담당자에게 전해야 했는데, 똑 부러졌다. 문제는 때때로 민원인을 대변하느라 업무 담당자와 얼굴을 붉힌다는 점이었다.
누구보다 맡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기에 계약 연장이 힘들 수도 있다. 그녀는 그 법칙을 모르는 듯했다. 일을 제대로하는 것과 잘하는 건 엄연히 달랐다. 이 세계, 이 공간에서는,
이상하게도 그랬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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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좋아질 때, 나는 나의 안 좋은 상태를 털어놓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나의 안 좋은 상태를 털어놓고 싶어질 때, 나는 내가 그 누군가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알게 된다. - P64

오늘 밤은 배는 차고 등은 뜨겁고 이마며 콧잔등에 땀이 고여서 그런가 왠지 눈에도 물기가 고일것 같은 밤. 내일 해야 할 일만 생각하는 단순한 마음, 텅 빈 머릿속으로 깊은 잠에 들고 싶은데 몸 여기저기가 붓고 쑤시고 왜인지 그런 상태로 누운 내가 너무 측은하고 가여워서 아무에게나 나 아파요,
정말로 아파요...... 하고 참았던 눈물을 펑 터뜨리고 싶은 밤. 아무에게가 실은 아무에게는 아니지만. - P64

콕 집어 그 사람에게 해도 후회하겠지만. 후회할 걸 알아서 이젠 그러지 않겠지만. 그 아무에게 별로 서럽지도 않을 일들을 그러모아 나 진짜 서러워, 하고 말하고 그가 나를 안아주길 바라지만그런 걸 상상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기도 하는 밤..…………. 뭉게뭉게 끊이지도 않을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하고 싶은 뭔가가 있네, 어쩌면 당연한 욕망을 발견하고 약간은 시시하고 약간은 부풀어서 기우뚱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잠드는 밤. - P65

일탈을 벌이기 전에는 그것이 뭘 가져오는지 모른다. 일탈을 벌여봐야 일상이 소중했음을 깨닫게 되듯이. - P72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으로든 되겠지. 진부하지만, 그런 건 벌여보기 전에 아무래도 그렇겠지, 하고 미리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 P73

일상이 두 겹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책을 읽으면 나를 벗어나게 되는데 그럴 때가 좋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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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은을 위해주었던 사람, 자은이 따르고 싶었던 사람, 처음부터 어쩐지 좋았던 사람이 한편으로는 겁탈자의 무리를 이끌수도 있다는 것을 자은은 받아들였다. 어그러짐을, 오염을, 곤죽이 되고 범벅이 된 온갖 것들을 평정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삼켰다. 날뛰는 것들을 삼키고도 태연함을 내보이는 법을 배웠다. - P325

자은에게는 자은의 사람들이 늘었지만, 잠이 들었을 때는 홀로였다. 매가 새겨진 칼을 들고 조원전 앞에 서 있을 때의 꿈을 되풀이해 꾸곤 했다. 촉감까지 느껴지는 유난한 꿈들이었다. 칼은 자은의 손안에서 서늘했다가 뜨거웠고, 깃털 같았다가 무거웠다. 비명으로 가득한 꿈을 꾸고도 자은은 언제나 조용히 눈을 떴다. 죽은 자들이 질러대는 소리소리는 밖으로는, 아침으로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날을 더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입버릇 같은 혼잣말을 거듭했다. 누구나 더이상 새날이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날을 더해가며 산다. 그뿐이다. 야단을 떨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경망스러운 자들이나 달리 굴 것이다. 일어난 일들 일으킨 일들 모조리 품고 견디면 된다. 그럴수 있다.
말하다보면 믿기는 날도 더러 있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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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내놓고 민주주의를 지킨 1980년 광주의 시민들이 있었기에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에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 앞을 가로막은 시민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이렇게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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