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겪은 이 특별한 경험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내 친구와 함께 모두와 나누기로 했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우린 셋이 헤븐버스를확장해나갔지. 서로 아이템을 만들고, 놀고, 그땐 참 즐겁기만 했었어. 하지만 헤븐버스에 다른 사용자가 들어올 때쯤 나도 어른이 됐고."
"어린아이인 나는 이곳에 남아야만 했지."
아이들은 아픈 만큼 어른이 되고, 그것보다 훨씬 더 아프면 천국에 간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죽은, 헤븐버스에서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필요한 건 다 있고,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고, 되고 싶은 건 모든도전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끝이야. 따듯한 말로 예쁘게 포장하고 있지만, 아픈 아이들은 결국 끔찍하도록 불쌍해. 그런 아이들이 이곳에남아서 마음만 비정상적으로 커지면, 결국 나처럼 되는 거야. 버그가."
"알아. 하지만 넌 버그가 아니고 난 네 덕에 이렇게 어른이 됐어. 아픈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만든 걸 생각해."
"우리가 만든 건 전부 가짜일 뿐이야." - P244

"나는 나를 림보로 가는 열쇠로 만들 거야."
윤윤정현이 막았지만, 어른 성환은 막지 않았다. 예은의 아버지가 추측한 것을 통해 어린 성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고, 그것을 자신이막을 권한이 없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니까.
"너와 같은 아이들이 있나 찾으려는 거지?"
버려지는 아바타에 의식이 남게 되는, 의식의 잔상 복사 현상. 혼자남은 어린 성환은 고작 그것으로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만약 자신과 같은 이들이 림보에 남아 있다면,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여겼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고, 소년과 소녀를 만났고, 다른 친구가 생겼고, 결국 지금까지 왔지만, 그의 생각은 처음 헤븐버스에 버려졌을 때부터단 한순간도 자라지 않았다. 그는 이제 림보로 가야만 했다.
"내가 가서 그 아이들을 지켜줄 거야. 나 스스로가 림보가 될 수 있도록 할 거야."
성환이 변신할 때마다 그를 감싸고 있던 수많은 창들이 검게 물들어갔다. 마치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수호에게말했다.
"자, 이제 마지막 열쇠를 만들자." - P245

"현실에서 만나자."
그건 꼭 마치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눈을 떴다.
수면에 몸이 반쯤 잠긴 채 둥둥 떠 있었다. 겨우 상체만 일으켜서 본이곳의 바닥은 온통 잔잔한 바다처럼 검게 일렁이는 것밖에 보이지 않고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잠시 고민하던중에 수면을 밟고 누군가 나타났다.
"네가 이곳에 온 순간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단다."
어린 모습의 성환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만큼은 조금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무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여긴 나의 층이야. 8층 레이어, 내 아이가 아이템을 만들던 해변.
제작자의 공간. 저 아래 보이는 바다가 바로 7층 림보. 하지만 림보라는 건 원래 층으로 구별되는 게 아니야. 무한한 바다처럼 레이어 아래를 떠받치는 쓰레기통, 그러니까 모든 층의 데이터를 삭제하지 않고 담아서 보존하는 곳이지. 이게 림보의 실체란다." - P247

순간 떠밀려오는 기억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수호는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검은 수면 위로 비치는 자신의 아바타를 바라봤다. 결국 기억을 모두 되찾았다고 해도 생각은 다시 여기, 이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누구인 거지? 아바타인 건가? 가짜 천국에서 사는 아바타? 그러면 현실이 지옥이었던 거고? 그럼에도 나는 돌아가고 싶은 걸까? 순간 기억이 스쳤다.
"아니,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 P249

방향은 정했다.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내 친구가 보고 싶다는 거였다. 일어나자. 그 친구가 힘들다면, 구해주고 싶으니까. 수면에 비친 자신 역시 그랬다. 이게 아바타든, 버그든, 어린시절의 기억이든 상관없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다.
또한 다른 사람도 구할 수 있는 나, 그게 나다. 그러니 일어나, 걷자. - P250

"너구나?"
검은 바닷속 어떤 흐름, 휘어진 물살이나 파도처럼사람의 형체가 수호에게 다가왔다. 이곳 림보로 보내진아바타에 남아 있던 의식의 잔재가 모인 집합체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버그, 혹은 재민이나 친구들, 소녀,
그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것은 목소리를 냈다.
현실에서 보자고, 목소리의 주인인 진짜 헤븐버스의유령이 수호의 손을 붙들었다. - P261

"아무리 현실이 끔찍하더라도 살아 있기만 한다면 괜찮아질 거야."
마주치는 눈빛에 마음이 닿았다. 현실이 그 얼마나 힘들고 괴로워도, 현실로 돌아갈 몸마저 없고 지금까지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지더라도, 살아내야만 한다. 정처 없이 맴돌고 잠시 방황하더라도, 잠깐씩 길을 잃거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도 견디고 또 계속 일어나서 걷다 보면, 다시 한번 친구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병준은 그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뭔지 모르겠어. 내 의지로 하는 일이 있긴 했던 걸까? 나는 왜 죽으려고 했던 거지? 바깥은 도대체 얼마나 끔찍하길래? 바깥이 지옥 같고 이 낙원 같은 세상이 다 가짜라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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