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번이 릴라에 대해 자세히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것이다. 그날 이후로 릴라는 내게서 멀어져갔고 그만큼 이야기를 쓰는데 필요한 자료도 빈약해졌다. 그만큼 우리 둘의 삶이 전혀 다른방향으로 전개되어 서로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도시에 살게 되어 서로 거의 만나지 못하는 동안 언제나 그랬듯이 릴라는 좀처럼 내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릴라의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그렇지만 릴라의 그림자는 멀리서 나를 자극하기도 했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부심을 한층 고취시켰다가 어느 순간 위축시키기도 하면서 나를 도무지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런 자극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금 이 순간 릴라가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도 바로 그것이다. 나는 릴라가 내 글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덧붙이기를 원한다. 릴라가 마음 가는 대로 이야기에 그녀의 지식과 말과 생각을 덧붙여 우리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를 원한다. 파시스트가 된 지노와 마주쳤을 때의 이야기, 갈리아니 선생님의 딸 나디아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 오래전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가에 있는 갈리아니 선생님댁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 자신의 성경험을 적나라하게 되돌아봤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원한다. 그날 저녁 릴라의 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느꼈던 민망함과 아픔, 내가 릴라에게 해준 얼마 되지 않는 몇 마디 말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봐야겠다. - P135
"어떤 공부를 했죠?"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았어요."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아까 고함 소리도그렇고요."
"사실인 걸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예요."
"왜죠?"
"공부를 계속할 만한 재능이 없었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재능이 있는 건 엘레나였어요, 제가 아니라."
갈리아니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공부를 계속했다면 엘레나만큼 잘했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내 직업인걸요."
"선생님들은 그걸로 먹고사니까 공부가 중요하다고 하죠. 하지만실은 공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공부한다고 사람이 더 나아지지도 않고요. 오히려 더 못돼질 뿐이죠."
"엘레나가 못되게 변했다는 뜻인가요?"
"아뇨, 엘레나는 아니에요."
"왜죠?"
릴라는 젠나로의 머리에 울 모자를 씌웠다.
"어린 시절 둘이 약속했거든요. 둘 중 못된 역할은 제가 맡기로요"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