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릴라가 신부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서 속이 뒤틀렸다. 지금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번에는 그 대상이 사진이 아니라 카라치 부인 자신이었다. 이번에도 릴라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나를 끌어들였고 니노는 도구인 것이다. 그렇다. 니노는 가위나 풀, 페인트같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망가뜨리는 데 필요한 도구였다. - P387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모든 것이 빨리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악몽 속의 괴물들이 내 영혼을 먹어치우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저 암흑 속에서 미친개와 독사와 전갈과 거대한 바다 괴물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바다 끝자락에 앉아 있는 동안 한밤의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내 나를 고문하기를 바랐다.
그렇다. 내 모자람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르고 싶었다.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 오늘 밤도 내일도 맞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내 육체의 부적합함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드러날 미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 P405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불현듯 왜 내가 아닌 릴라가 니노를 차지하게 됐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감정에 몸을 내맡길 줄 모른다. 감정에 이끌려 틀을 깨뜨릴 줄 모른다. 내겐 니노와 단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릴라와 같은 강인함이 없었다. 나는항상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릴라는 그런 나와는 달리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갈망할 줄 알았다. 원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취할 줄 알았다. 열정을 다할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모멸감도 비웃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흠씬 두들겨 맞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릴라에게 사랑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상대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릴라는 니노를 가질 자격이있었던 것이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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