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은 이곳에 오는 동안 사람이 마음껏 잔인해질 수 없는 이유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잔혹성을 억제시키는 것은 인간의 높은 지능도 도덕성도 아니었다. 나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었다. 백철승은 그것을 세상에 보여 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수경은그 공포를 백철승에게 똑같이 돌려주었다. 백철승의 논리는 수경으로 인해 완성되었고, 그 결과로 파멸하고 말았다.
각자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잔혹에 잔혹을 쌓아가던 지옥 서버로 점철된 세상은 수경의 결단으로 비로소 평형을 찾았다. 지석은 진심으로 백철승과 홍수경이 잘했다고생각했다. - P258

"그럼 엄마는 자기가 죽인 놈이 아니라 너한테 사과한 거였구나. 얼마나 구제 불능이면 지옥에 떨어져도 그놈한테는 사과를 안 했을까. 백철승한테도 엿을 먹인 거네. 너네 엄마, 왜 이렇게 멋지니." - P259

면회실 문을 나서려던 지석은 발길을 멈추고 텅 빈 면회실을 돌아봤다. 그리고 면회하는 내내 수경과 지석을 가르던 아크릴 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지석은 아크릴 판이 없는공간을 상상했다. 지석이 정신을 집중하고 천천히 손을 치웠으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너무나 단단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 튼튼한 장벽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차별 없이 가둘 수 있었다면 철승과 수경의 비극이 없었을까? 지석은 쓸쓸한 마음을 삼키며 돌아 나왔다. 구치소 밖에는 그 찰나 사이에 봄기운이 찾아와 있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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