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다른 애들은 그 여유가 부럽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뜬금없는 과거 소환에 선우가 물었다. 험상궂은 얼굴의 사천왕조각상을 모신 천왕문을 막 지났을 때였다.
"뭐라고 했더라. 구김살도 열등감도 없는 여유라는 이름의 인간쿠션이라고 그랬나.
"쿠션?"
"뭘 던져도 생채기 하나 안 입고 태연하게 튕겨 낼 것 같다고."
"설마."
일부러 제 껍질을 단단히 하려고 부단히 애쓰던 때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 시절의 모습을 되새기자니 좀 멋쩍어져서 당장 사천왕 뒤에라도 숨고 싶었다. - P175

공포는 체념이 되고 체념은 절망이 된다. 절망의 감각을 설명하라고 하면 선우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아픔을아픔으로 분노를 분노로 세상과 시간에 무뎌진다. 자기의 존재감도 이것이 삶이라는 것에서도 절망은 침묵과도 많이 닮았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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