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겠다고 했어.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다 웃는 거야. 11년이나 기다리는 남자는 아무도 없대.
당신이 기다릴 거라고 생각해서 가는 게 아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편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나는 잠들어 있을 거야.
답장을 해 줘. 깨어나서 볼 테니까. 당신이 어떤 선택을 했든 서운해 하지 않으려 해. 나는 내 선택을 했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을 한 거니까.
홀흙흘
아니, 그렇지 않아.
너무 바라서 말로 다 할 수도 없어. 너무 바라서 차마 바랄 수가 없어. 그래서 잠을 자려고 해. 나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마중 나와주겠어? 어떤 모습으로든 좋아.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으면 많이 슬플 것 같아.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예식장에 갈 거야. 가서 혼자라도 기분 내야지. - P26

당신이 거기서 멍하니 생각에 잠긴 채로 걸어 나와. 잘못 내렸나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려. 내가 기름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채 가서 당신 볼을 쿡 찌를 때까지.
하객들이 덩굴꽃으로 뒤덮인 차를 몰고 왔어. 몸에서 도꼬마리며 풀을 털어내며 나오더라. 풀꽃을 뜯어서 부조금 대신 손에 들고 이끼와 담쟁이와 나팔꽃에 휘감긴 건물로 들어와.
당신이 문가에 서 있어. 이 무거운 치마를 어쩌면 좋으냐고 뒤뚱거리고 있어. 하객들 사이로 오는 나를 보며 핀잔을 줘.
늦었잖아.
그러게,
내가 맨발에서 모래를 털며 말해.
처음이라 긴장했나 봐. - P88

그때 시골집 문설주를 쓰다듬던 당신이 생각났어.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났어.
사람이 드나드는 집은 오래 간다고.
누군가 문을 열고 닫고 환기를 시켜 주고, 이불을 펴고 누워 자고 깨고, 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먼지를 쓸고 물기를 닦아 주는 집은.
그제야 당신 편지가 떠올랐어.
그렇게 수십 번 반복해서 보았었는데, 왜 지금까지 떠오르지 않았을까? 당신이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데.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 P90

그 후로도 계속 왔나 봐. 뒤에는 애인이나 자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라.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의 사진도 있었어. 나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V)를 하고있더라. 거기에 "먼저 간다. 임마."라고 쓰여 있었어.
‘항구에 당신이 없으면‘
당신이 내 귀에 속삭였어. ‘혼자라도 기분 내야지.‘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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