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이었어.
색이 남아 있다는 건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색이 바래지 않았다는 거야. 어릴 때 창가에 놓아둔 책들을 떠올렸어. 몇 년 가지 않고 표지가 하얗게 바랬었는데.
종이를 커튼에서 떼어냈어. 잘 안 떨어지더라. 접착제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었어. 작년이었을까? 한달전? 어제?
방금?
해가 기울며 창에 걸쳐졌어. 창에 걸쳐진 해가 은빛커튼을 드리우며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모습을 드러냈어. 비질을 한 바닥, 새로 종이를 얹은 제단, 제단에 놓인 꽃병, 누군가 불을 피운 흔적이며 그 위에 얌전히 놓인 양은냄비까지. 사람이 밟고 오간 발자국이며 이부자리 흔적까지. - P95
배에 있으면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바람도 소리도 없어. 별빛은 기울어져 눈앞에 전부 쏠려 있어. 온 우주의 별이 다 한데 모여 섬광처럼 빛나. 여기 있다보면 빛의 속도로 나를 스쳐 가는 것은 온 우주고, 지구며, 내 집과 친구들이고, 나는 여기에 서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래서 내 시간도 서는 거라고.
공간과 시간이 같은 것이라는 말을 누가 했는데.
다른 시간대로 가는 건 다른 장소에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지.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