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여름을 칭찬해 주었지만 돌아서면 다른 아이를 사랑했다. 그때마다 여름은 사랑받지 못하는 껍데기를 벗고 대본 속의 새인생으로 영혼을 갈아입었다.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생! 마법을 기다리기만 하는 신데렐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대본이 마법 지팡이가 돼 깨지지 않는 유리 구두를 만들기를. 발밑의 모든 것이 마차가 돼 자신을 소망대로 이끌기를. 여름에게 연기는 곧 변신이었다.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역할을 드레스처럼 입고, 연극이 막을 내리면 그 옷 안에 있는 알맹이가 수빈이 아닌 타오르는 ‘여름‘임을 온 세계에 보여 주고 싶었다. - P88

이유는 간단했다. 대본의 세계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눈과 코, 입과 턱의 모양에만 머물 정도로 얄팍하지 않았다. 성공이란 녀석은 언제나 보다 다충적이고 집요한 과정을 요구했다. 예쁜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것. 손 위의 알약들이 절대 만들어 주지 못할 궁극적인 미였다. - P95

겨울은 사랑이라는 단어 위에 감히 여름을 겹쳐보았다. 그 아이의 실력을, 노력을, 열정을 훔치고 싶었다.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한편, 그 아이의 찬란함이 보존되길 바랐다. 격이 다름을 인정하여 우러러보면서도 그 마음을 부정하고 싶어지는 참으로 괴이한 욕망. 그 감정은 언제나 사랑과 미움 사이의 모호한 선 위를 얄밉게 오가는 바람으로 겨울에게 불어닥쳤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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