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보다 외모로 주목받는 여자아이들의 행동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모를 이용한 계략으로 곡해되기 쉽다는 걸 겨울은 깨달았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아도 필사적으로 모른 체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향한 남자아이들의 마음이 순수한 우정으로 지속되기 어렵단 걸 알게 된 후로 곁을 여자아이들로만 채웠다. 남학생을 배척하고 여학생을 우선으로 대우해 주자 친구들은 겨울을 ‘털털하고 예쁜아이‘로 인정하며 반겼다. - P29
"넌 있는 집 딸이라서 간절하지 않은 거야." 겨울은 지긋지긋했다. 사람들은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늘 부러워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부잣집‘이라는 틀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마음을 거세당한 채 살아야 했던가. 겨울은 잘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노력이란 걸 했다. 그런데도 여름만큼 연기를 잘하진 못했다. 가진 자가 무능할 경우 세상은 당사자를 더욱 가혹하게 비난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음에도 마음은 시멘트사이의 잡초였다. 세계는 건조한 사막이라 물방울 하나 내려 주지 않았다. - P41
현실에서 달아나게 해 줄 낙원은 대본 속에, 현실을 바꿔 줄 마법진도 대본 속에, 현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지옥도 모두 대본 속에 있었다. 흰 종이는 세계요, 검은 글자는 영혼이니 이 순간 여름에게는 얇은 문서 뭉치만이 전부였다. - P47
안쓰럽지 않은 기특함은 없는 걸까, 노인은 그리 생각하며 손녀가 좋아하는 무지갯빛 컵에 우유를 가득 채워뒀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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