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한양에서는 〈등등곡>이라는 가요가 유행하였다. 때에 따라 수십, 수백의 사람이 모여 저잣거리에서 울고, 곡하고, 사뭇 미친 척하는가 하면 웃기도 하고 춤추고 뒹굴며 괴이한 노래를 불렀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로 양반가의 자제들로 영의정의 아들 이경전, 우의정의 아들 정협 등에 더불어 허난설헌의 남편이자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매형인 김성립도 있었다고 한다. - P100
옛말에 초상난 절에 중은 많다고 하였던가.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후일 이 망국의 수도에 이렇게도 많은 예술가가 날 줄을 미리 내다보았을까. 수도라고 해도 기껏해야 인구 20만 안팎에다 토지 대부분이 날것으로 남아 있는 열악하고 초라한 도시. 그러한 경성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예술가연하고 있었다. 그들 전부는 아닐지라도 몇몇은 필연 거짓되이 예술가 시늉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리란 의심을 해봄 직했다. 때로 내게는 경성 전체가,
나아가 조선 전체가 거짓의 전당처럼 느껴졌다. 가엾게도 스스로가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젊은 예술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예술가가 아닌 자신을 예술가라 믿으며 살아가는 어릿광대의 노릇.
물론 나 자신 또한 어디까지나 그 무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나는 결코 잊지 않았다. -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