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언젠가 네 눈빛이 나에게 알려줬지. 증오가 아니라 환상이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다른 꿈을 꾸게 됐어. 네가 지상을 말할 때 반짝이는 눈빛이 좋아서, 너를 먼 곳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어. 네게 세계를 돌려주고 싶었어. 어쩌면이 행성 전체가, 네가 마땅히 거닐었어야 할 곳이니까." - P384

범람체의 연결망에 전이자들이 유입되면서, 이들은 행성 전체를 아주 느리지만 연결된 형태로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범람체는 이 행성 전체에 퍼져 있었다. 인간이 개체 중심적인 존재이기만 했을 때, 그들은 개인 혹은 작은 집단만을 생각했을 뿐, 행성전체를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범람체와 결합된 인간은 연결망 속에서 사고하고, 그렇기에 자신이 행성 전체의 일부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였다. 지상의 일부를 인간의 터전으로 삼더라도, 지금 늪과 연결된 이들에게는 무작정 뻗어나가고 싶은욕망이 없었다. 연결망을 통해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전체로 이어진 생각 체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스스로의 생각을 재검토하는 일이었다. 부분적인 충돌이 있었고 그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쳤지만, 전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부분은 없었다. 범람체와 결합된 인간이 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 P418

단지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태린은 그것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 P419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 P420

태린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이제프처럼, 태린도 아주먼 곳으로 그를 데려오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야 태린은 알았다. 증오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 더 멀리까지 올 수 있다고. 이제프도그걸 알아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 P424

"네가 보는 이 풍경은 어때?"
그렇게 물으며 태린은 눈을 감았다.
시야가 변했다. 바다는 수많은 소리와, 움직임과, 열기와 재잘거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파도를 따라 입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만났고, 그 표면에서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기류가 무수한 원을 그렸다. 원들이 합쳐지고 일그러지고 다시 흩어졌다. 부드러움도 날카로움도 서늘함도 따듯함도 모두 그 안에 있었다. 밤의 바다는 많은 색깔들을 품고 있었다. 온몸으로 감각되는 빛의 조각들을.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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