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 P150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은 호텔 맨 꼭대기 층에 있었어. 일을 마치고 복도로 나와서 서울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날들이 떠올라. 그럴 때면 내가 아직 스물두 해밖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 벌써 백 년은 산 것 같은데, 이미 너무 오래 산 것처럼 지쳐버렸는데 아직도 스물둘이래.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하는 것 같았어.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지.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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