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가 가장 친절하게 죽는 방법이라면 최악의 방법은 불에 타 죽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디 윌러드는 그때 본 병속에 든 태아 중에는 아가미가 있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물고기랑 똑같은 단계를 거친 아이들이라고. - P209

"못 가겠어요."
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알았어요. 당신은 돌아가요."
나는 헤엄쳐서 돌아가지 못할만큼 녹초가 될 때까지 수영할 작정이었다. 앞으로 나갈 때 내 심장박동 소리가 답답한 모터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 P210

그때 내 몸이 온갖 종류의 속임수를 쓴다는 걸 알았다. 중요한 순간에 양손이 늘어졌고, 그러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내 의도대로라면 순식간에 죽는 거였는데,
남은 감각을 지닌 채 기다리기만 하면 될 터였다. 혹은 함정에 빠져 무감각하게 오십 년 동안 우리에 갇혀 있게 되겠지. 사람들은 내가 정신이 나간 걸 알면 엄마가 반대해도 날 요양원에 넣어 치료받게 하라고 엄마를 설득하리라.
내 경우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잡화점에서 비정상적인 심리에 관한 문고판 책 몇 권을 사서 책에 나온 내용과 내 증상을 비교해보니, 나는 가장 가망없는 경우와 맞아떨어졌다.
스캔들을 다루는 신문 외에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심리학 서적뿐이었다. 작은 출구가 남아 있어서, 인생을 적절하게 끝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P212

최근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될까 고민했다. 가톨릭에서는 자살을 엄청난 죄로 본다는 걸 알았다. 정말 그렇다면 자살을 만류할 방법을 알고 있을 터였다. - P218

금고를 열어 수면제 병을 꺼냈다. 수면제가 기대보다 많이 있었다.
적어도 쉰 알은 될 것 같았다.
엄마가 밤마다 조금씩 주는 약을 모으며 기다렸다면 오십일은 걸렸을 터였다. 오십 일 후면 대학이 개강을 하고 동생이 독일에서 돌아올 터였다. 그러면 기회를 놓치게 되겠지. - P223

부드러운 나방 같은 거미줄이 얼굴에 닿았다. 검은 우비로 그림자처럼 몸을 감싼 채 약병을 열었다. 재빨리 수면제를 한알씩 입에 넣었고 중간중간 물을 삼켰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약을 다 먹었을 즈음에는 눈앞에 울긋불긋한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약병이 손에서 미끄러졌고, 난 누웠다.
정적이 꼬리를 늘이니 조약돌과 조가비가 드러났다. 초라하게 부서진 내 삶 전부도 그 순간 그것이 하나가 되더니, 밀려드는 파도 속에서 날 잠으로 밀어 넣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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