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은 이제 위가 아닌 옆으로 성장하고 싶었다. 두 나무의 끄트머리 이파리는 이미 맞닿아 있었다. 그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너의 꽃과 나의 꽃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지고 싶어서 - P13
태풍이 몰고 온 온갖 위협 속에서 두 나무는 서로 뿌리를 움켜잡고 가지를 끌어안으며 다짐했다. 봄이 오더라도 새잎을 만들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짐했다. 봄이 오면 마지막인 것처럼 더 많은 꽃을 피우겠다고. 이어 다짐했다. 열매 따위 맺지 않고 뿌리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더 많은 열매만이 다른 세계에 닿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다짐을 번복하고 반복해도 비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거대한 태풍은 숲을 손아귀에 구겨 쥐어 바다 한가운데로 내팽개치려고 했다. 뿌리가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숲의 존재들이 한 번쯤은 은밀하게 꿈꾸던 그 바다로. - P15
다음해 봄. 두 나무는 정지했다. 죽음을 흉내 내는 방법으로 죽음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듯. 짙푸르고 무성한 잎을, 생명을 뽐내는 꽃을 삶을 퍼트리는 열매를 단 한 번도가져보지 못한 나무처럼, 태풍이 구겨버릴 삶은 거기 없는것처럼, 그들은 죽은 듯이 살기로 했다. 더는 자라지 않고그대로 멈추려고 했다. - P15
월화는 자기를 소문의 소용돌이에 가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쓸 때 들뜨던 마음을 떠올렸다. 글에 쓴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따돌림이지만 어쨌든 그 또한 글에 쓴 내용이었다. 월화는 소문을 지어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했다. 그들 또한 실제로 월화가 밤마다 중학생들과 어울리며 날라리 짓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어른과 키스하는 대가로 돈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걸까? 월화는 이야기 속 주인공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다. 이화정을 비롯한 다섯 명도 마찬가지 아닐까? 기나긴 생각 끝에 월화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소문을 지어내는 이유는 심심해서다. 월화의 하루하루가 그러하듯이. - P34
심심해서 상상했고 지어낸 이야기를 퍼트렸고 그것을 거듭하다 보니 진심으로 월화를 싫어하게 되었다. 싫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심심할 수가 없다. 월화는 소문을 두려워하는 대신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이 더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을 꾸몄다. 그것은 연기에 가까웠다. 연기하는 삶은 재미있었다. 그들이지어낼 소문을 짐작하는 시간은 흥미로웠고 짐작이 적중할 때는 짜릿했다.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앞서가고 끌어가는 것. 휩쓸리지 않고 관망하는 것. 그들이 싫어해도 월화는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싫어하는 자기는 연기로 만들어낸 가짜니까. 그들이 원하는 것 같으면 상처받는 연기를 할 수도 있었다. 슬프고 우울한 연기도 가능했다. 월화는 자기 짐작대로 반응하는 그들이 우스웠다. 월화는 지는 방법을 몰랐다. - P35
소문은 죽음보다 잔인했다. 목수도 목화도 그 누구도 그날의 일을 온전히 그대로 기억할수 없었다. 사실 아닌 것이, 감정이, 착각이 섞였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없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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