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불쑥 찾아왔다. 정현이 입고 온 바지는 사진속의 바지와 같았고 모자도 사귀기 전부터 자주 보던 거였다. 나는 내모습을 훑었다. 작업하는 데 거슬려서 자주 입지 않던 원피스에, 5센티가 넘는 굽의 구두, 그리고 길게 내린 앞머리. 그는 그대로인데, 그의 옆에 있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이 상황이 아주 기이하게 느껴졌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잘못 들었는데, 어떻게 돌아갈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 P26

어둠에 잠긴 공간에서, 오랫동안 내가 만들던 두상을 바라보았다. 그건 정현의 얼굴도 뭣도 아니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얼굴을 빚고 있었던 것이다. 내 머릿속의 정현과 현재의 정현, 그리고 사진 속 정현의 얼굴이 마구 뒤섞인 얼굴이었다. 나는 정현의 두상에서 시선을 떼었다. 와중에 태주라는 이름만이 뇌리에 박혔다. - P28

"다들 있는 것도 그냥 없다, 없는 것도 있다 하고 사는 거죠."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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