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사이 복희는 집중해서 책을 마저 읽는다. 소설은 복희의 눈코입을 통과하며 거의 정확하게 이해받고 있다. 바로 이 사람을 독자로 만나기 위해 몇백 년을 살아남았다는 듯이, 소설은 복희의 손 아래에서 영광을 누린다. - P234

웅이가 잠자코 들으며 못을 박는다. 그는 문득 호시절을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딸에겐 젊음과 능력이 따르고 자신에게 체력과 연륜이 따르는 이 시절. 별다른 슬픔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이 시절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영원할 리 없다. - P279

미소 짓는 슬아의 가슴속에 하나의 문장이 조용히 떠오른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슬아에게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 중 하나다.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계속 쓸 수 있겠는가.
슬아는 자신에게도 신앙이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추앙과 문학에 관한 믿음으로 아는 움직여왔다. 신의 입을 빌려 기도하고 몸을 낮추듯, 슬아 역시 자기보다 먼저 살아간 작가들의 힘을 빌려 글을 쓴다.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얻고자 하는 건 전지적인 시점일 것이다. - P294

불가능한 목표지만 연습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그건 어쩌면 신의 시선을 상상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헤아리는 일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나는 고작 미물일 뿐인데 말이다. 슬아는 처음으로 스님과 자신이 조금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 P295

납작 엎드릴 때마다 슬아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속으로 기도한다. 좋은 이야기를 쓰게 해주세요. 이 일을 계속 사랑하게 해주세요. 어딘가에 독자들이 있음을 믿게 해주세요. 용기 잃지않게 도와주세요. 절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108배는 슬아가 글을 쓰기 전마다 반복하는 의식이 된다.

한편 웅이는 매주 구매하는 로또 번호를 맞춰보고 있다. 이번에도 운은 따르지 않았다. 그치만 다음주에도 또 복권을 살 것이다. 언젠가는 당첨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행운이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간다.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임을 알지 못하는 채로그들은 종교의 근처를 배회한다. - P297

대니 사피로의 책 <계속 쓰기>에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문장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를 붙잡은 그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자신과 만물을 관통하는 우주의 실을 향하고 있다."
평생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글을 쓰려 합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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